교실 에세이저 여기 있어요! 여기여기요!


저 여기 있어요! 여기여기요! 



2023.7.24.     익명의 교사1


레즈비언이나 게이 교사가 있을까? 아마 ‘있다, 없다’ 대답 이전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던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선생님이 감히 게이, 레즈비언, LGBTQ+어쩌구라니?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육공무원 사회 역시 한국 사회의 일부인 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으니 당연하게도 그 중에는 LGBTQ가 있다. 놀랍게도, 당신이 보고 있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레즈비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를 걱정하거나 아니면 당장 어딘가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어쩌겠나. 퀴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당신 옆에서 방금 인사한 그 사람도 퀴어일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된다고? 글쎄, 내가 이미 존재하는걸! 여기 있는걸. 당신은 지금 어디에나 존재하는 퀴어1의 글을 보고 있다.

보수적인 축에 속하는 교직에서 LGBTQ+ 정체성을 밝힌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페미니즘 교육을 한다고 각종 민원이 들어오고, 동성애에 대해 알리는 것만으로도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민원이 들어오는 판국이니 그 속의 퀴어 교사들은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퀴어를 찾아내거나 서로 알아보기조차 어렵고, 서로의 존재를 알기 어려우니 유대감을 갖거나 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사회가 바뀌어간다고는 하지만 그 변화의 파도가 교직 문화까지 밀려들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교직에서 LGBTQ+로 살기는 차암 팍팍하기 그지없다. 고경력 선배들은 얼른 결혼해야 한다고 다그치고, 애를 낳을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 좋다고 말한다. 아직 이성 친구가 없다고 하면, 놀라워하며 주변을 수소문해 소개팅을 해 주겠다고들 하신다. 내가 이성과 결혼을 원하는 결혼주의자였다면 눈물나게 감사했겠지만, 이를 어쩌나. 나는 동성과 결혼하고 싶은 결혼주의자인 것을... 내가 결혼을 하려면 우선 법이 바뀌어야 하고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저의 결혼을 지지하신다면 먼저 차별금지법부터 통과되도록 목소리를 내 주셔야 하...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못 사귀어서 너무나도 속상하다는 표정으로, 그저 하하 웃으며 자리를 뜬다.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이에게 나를 구구절절 설명하느니, 내가 좀 못난 사람이 되는 게 편하겠다는 심산에서다. 이렇게 또 한 번 더 편견의 갑옷을 껴입는다. 이제는 이 갑옷이 너무도 견고히 내 살갗과 달라붙어 있음을 느낀다.

단순히 결혼과 ‘정상 가정’에 대한 얘기 뿐이라면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있지만, 주변인들의 혐오 발언을 계속 듣다 보면 내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따라붙는다. 오래 알고 지낸 교사 지인들이 있다. 오랜 시간을 너나들이하며 지냈기에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지냈다. 그 모임에서 한 동료가 ‘우리끼리’ 있을 때 하는 이야기라며, 자기 학교의 신규 교사 두 명이 친하게 지내는 꼴이 마치 레즈비언 같다고 농담을 했다.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절망했다. 동료는 ‘우리끼리’라는 말로 우리의 결속을 다졌지만, 나는 그 ‘우리’ 안에 들 수 없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더없이 좋은 교사라는 것이 나를 더 외롭게 한다. 다정하고 섬세하며 어린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좋은 교사. 그런 ‘좋은 사람’들이 의도 없이 던진 말들에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제 이 정도 혐오발언 쯤은 이겨낼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가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여기는 말들을 들을 때면 나라는 존재는 훅, 저 멀리 내던져진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먹고 살며, 교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이 직업에 속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론 그들은 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겠으나) 나를 배제하거나 지워낼 때면 더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 혐오를 반박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줄 수 없을 때, 심지어 스스로의 안전함을 위해 그 혐오에 동조해야만 할 때는 자괴감마저 든다. 나의 정체성을 알면 수용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런 것들이 교육 공동체 안에서 내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게 한다.

한편으로 나는 그동안 무수히 마음이 깨졌을 퀴어 청소년들을 떠올렸다. 어른인 내 마음도 이렇게나 아픈데, 그들은 그들의 무리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얼마나 그 마음이 산산조각났을까. 내가 퀴어이듯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도, 내가 만나는 다른 교사들도 퀴어일 수 있다. 왜냐, 퀴어는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그러니 세상이 팍팍하다고 해서 마냥 앉아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 1월 아웃박스 신학기 워크숍의 입장 팔찌는 무지개 빛깔 :-)


서로의 앨라이가 되어 주자. 아직 불안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기대 설 수 있는 깃발이 되어 주자. 빨리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정립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뒤늦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를 찾고 기댈 수 있도록, 또 서로를 찾아내고 위로할 수 있도록, 표현하자. 교실에서 생겨나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칙을 정하자. 수업 중 말하는 것들에 고정관념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자. 나도 몰랐던 행동에 성차별이 담겨 있지 않은지 점검하자. 퀴어도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미리 만들자. 언제든 누가 와도 환영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기억하자,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마지막으로, 외딴 섬처럼 홀로 변화의 파도가 밀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 걱정 마시라.
파도는 끊이지 않고 계속 밀려들 것이다.
인간이 파도를 멈출 수 없듯, 함께 만드는 이 변화의 파도가 세상을 바꾸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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