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여자들의 카르텔


여자들의 '카르텔'

2023.7.16. 아웃박스 두디


  K지역의 B학교에서 2년 근무한 적이 있다. 생활근거지와 멀디 먼 뜻밖의 학교에 덜컥 떨어지는 비운에 빠져 그곳이 영 마음에 붙지 않았다. 그 학교는 크지 않은 규모로, 비교적 신규교사 그리고 남교사가 많은 편이었다.

  어딜 가나 그러하듯 그곳에도 이른바 ‘남모(남자 모임의 약칭)’라는 것이 있었다. 남교사 간 결속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주에 한 번은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교류가 잦아 보였다. “형님, 내일 점심 얼큰콩나물국이라는데 한 잔 하셔야죠.” 이런 식이었다. 인상 깊었던 건, 연령대가 다양했음에도 호칭은 ‘형’ 또는 ‘형님’으로 통일되었다는 점이다. 새로 발령 난 신규교사도 ‘남모’에 한번 참여하고 나면, 어제까지만 해도 선생님이라 칭하던 선배교사들을 어느새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남모’ 일원들의 ‘형님’ 소리를 들을 때면 뭐랄까,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감정을 소상히 묘사하자면, 조폭 영화가 연상되는 터라 교육기관에서 듣기엔 불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 간의 연대가 어찌나 끈끈해 보이는지 소외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는, 부러웠다. 신규 남교사가 특히나 그랬다. 미지의 공간에 덜컥 떨어졌음에도 누군가 설치해둔 안전망에 무사히 안착해 그 아래 도사리는 외로움과 낯섦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게 눈물 나게 부러웠다. 환대와 챙김을 그다지 받지 못해 서글펐던 나의 신규 때가 오버랩되기도 하고. 그들의 친목을 지켜볼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북스러움의 정체는 부러움을 들키기 싫은 자기방어였으며, 내게는 초대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박탈감이었다.


 이듬해에 나는 카풀 팀을 결성했다. 고유가 시대, 기름값 아껴 내 집 마련하겠다는 세 여자가 만난 것이다. 나를 제외한 두 분은 신규였다. 매일 2시간 출퇴근하는 차 속에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서로의 일상과 취향과 엠비티아이를 나누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공유했다. 셋의 이야기를 합치니 학교에 관한 정보라면 공백이 거의 메워졌다. 셋 중 하나가 의견을 제시하면 이내 세 명분의 의견으로 규모가 커졌고, 전체의 여론이 되기도 했다. 설령 그것이 회식 메뉴로 샤브샤브가 좋겠다는 의견일지라도. 사람이 모이니 권력이 되었다. 작든 크든 그건 정치고 권력이었다.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는 기름값 아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더 많은 동료들과 함께 자발적인 친목회를 가지며 정을 쌓았다. 어쩌다 보니 ‘여모’가 되었다. 정보를 공유하고 좋은 일은 같이 했다. 어려움이 생기면 서로 도왔다. 부당한 일을 겪으면 함께 맞서주었다. 나의 교직 생활에서 떼어낼 수 없으리라 체념한 외로움의 감정이 어느새 소강해 있었다. 그 자리에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다. 목소리에 힘을 싣고 어깨를 폈다. 이런 애티튜드도 끈끈한 연대에서 나오는 권력의 한 형태였다.

  이런 모양의 권력을 많은 여자 교사들이 취하고 즐기기를 바란다. 조심스러움이나 체면은 잠시 내려놓고, 서로 더 가까워지기를. ‘형님 문화’에 대항하는 여자들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밀어주고 끌어주고 연대하며 연결이라는 정치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 우리는 좀 더 뻔뻔하게 뭉치고 나댈 필요가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외롭다.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도 연결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모이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만드는 중인데, 전입교사건 아니건, 교과교사건 비교과교사건, 신규건 아니건, 내향형이건 외향형이건, 이 사회가 어려운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잇는다. 물론 나홀로 발령받은 신규 남자 선생님도 함께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낯설고 외로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손 내밀자. 우리의 카르텔은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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