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씨앗을 흩뿌리다보니 ‘이게.. 되네..?’

씨앗을 흩뿌리다보니 ‘이게.. 되네..?’


2023. 7. 9.    서하


“칠판에 학습목표와 활동 내용은 꼭 써야 돼요.”

“수업 잘 봤어요. 근데 선생님, 교실 환경 좀 꾸며야겠더라.”

 교장, 교감 선생님께 피드백 2연타를 맞았던 건 작년에 야심차게 준비한 성평등 공개수업에서였다.

 

 저경력인 나는 임상장학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나름 성평등 수업을 개발하는 연구회 회원인 내가 무난한 교과목을 선택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학교의 막내 교사로서 MZ세대의 열린 정신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장, 교감 선생님이 걱정이었다. 특히나 전통적인 아침 조회를 너무나 좋아하셔서 수업 시간 넘어서까지 훈화 말씀을 하시고 친목회 행사 불참자를 찾아내시는 교장 선생님의 반응이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소심해진 마음에 한껏 앞서갔던 걸음을 백스텝하여 가장 대중적이고 공통된 시각을 공유하는 외모 평가를 주제로 선정했다.

 1차 관문은 임상장학 멘토이신 학년부장 선생님이었다. 평소 ‘집사람’이라는 말씀을 입에서 놓지 않으시는 부장님께 지도안을 보여드리려니 주제를 정할 때의 포부와 달리 의외로 긴장이 되었다. 머릿속으로 부장님의 반응을 여러 갈래로 상상하니 아찔해져만 갔다. 애써 마음을 감추고 부장님께 지도안을 보여드렸다.

“좋은데요?”

 고등학생 딸아이의 아빠로서 수업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셨으며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거울을 들여다보는 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씀하셨다. 피드백에 관한 상상의 나래 중에 긍정적인 반응은 없어서 오히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지레 겁먹고 편견에 갇혀있던 건 사실 나였나보다.

 어쨌든 1차 관문은 통과다. 부장님의 말씀에 자신감을 얻어 수업을 준비해갔다. 수업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사후 협의회 시간에 해당 수업과 나의 주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거의 외우다시피 수업 소개글을 준비했다.

 드디어 공개수업 당일이 되었다. 다가오는 2차 관문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대체로 괜찮다가도 가끔씩 분위기에 휩쓸리는 우리 반 학생들에 대한 걱정 속에서 떨리지만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은 순조로웠고 학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활발했다. 수업의 일등공신은 축구 선수를 준비 중인 학생이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가 대신 신체 기능의 장점을 찾아내는 활동에서 자신은 코어가 좋은 편이라 축구할 때 방향 전환이 빠르다고 말했다. 그 말에 영향을 받아 다른 학생들도 활동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계획된 시간보다 빨리 끝나 외모 평가에 대한 나의 경험도 꺼내면서 진심을 다해 수업을 마쳤다. 2차 관문, 예상보다 수월하게 통과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자 나의 목표 지점인 사후 협의회만 남았다. 내 수업과 우리 연구회에 대해서 뽐낼 시간이다. 꽤나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교장실에 들어가 준비한 내용을 말씀드린 후 교장, 교감 선생님의 반응을 살폈다. 부장님이 내 편견을 깨주었던 것처럼 교장, 교감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수업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다.’ 등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교감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랬다.

“칠판에 학습목표와 활동 내용은 꼭 써야 돼요.”

 물론 이후에 수업 전반에 대한 피드백은 하셨으나 내가 기대한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직 희망은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말씀도 예상 밖이었다.

“수업 잘 봤어요. 근데 선생님, 교실 환경 좀 꾸며야겠더라.”

 그러고는 교실 환경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하셨다. 실망스러운 마음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다. 학년부장님이 협의회를 마무리하시면서 뜻깊은 수업이었다고 다시 한 번 말씀해주셨지만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수업 내용에 대해서 말할 것이 없을 만큼 내 수업이 별로였나? 성평등 교육에 대한 내 포부를 듣기는 하신 걸까? 수업 주제에 대한 반감보다 무반응이 더 기분이 묘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는지 실망도 컸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날, 교문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쳤을 때 하신 말씀에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 너무 귀엽다. 아이고, ‘귀엽다’, ‘예쁘다’ 칭찬은 안 좋다고 했는데, 실수했네. 미안해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작년 공개수업에 관심이 전혀 없으셨는 줄 알았고, 기억도 못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의 기억 어딘가에 있긴 했던 것이다. 뿌려놓았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곳에서 피어난 새싹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씨앗을 심고 있다. 학생들에게 심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심기도 한다. 정성껏 심기도 하고 때로는 흩뿌리기도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아 지칠 때가 있다.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의 마음 속에 작디 작은 씨앗이 심어진 것처럼, 우리를 통해 누군가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리가 퍼뜨린 씨앗들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 어느 순간에는 말하고 말 것이다.

“이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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