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서로 좋아하니까 사랑이죠 - 교실 속 퀴어 이야기



서로 좋아하니까 사랑이죠

- 교실 속 퀴어 이야기


2022.06.25. 아웃박스 봉봉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부산스러움이 남아있는 채로 5교시가 시작되었다. 밥도 먹었고, 수다도 떨었고. 이제 슬슬 졸음이 몰려올 때라는 걸 안다. 아이들과 함께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다. 몸을 풀고난 뒤 조금은 정돈된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오늘은 연애 이야기 할 거예요.”

말을 마치자마자 환호 소리가 이어졌다.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누가 누구랑 사귀는지 조잘거리던  아이 몇 명의 눈이 반짝반짝해진 게 느껴졌다. 평소 친구를 모태솔로라고 놀리던 아이도, 주제 글쓰기에 늘 로맨스를 그리는 아이도, 반대로 그런 건 관심 없다며 연애 얘기만 나오면 조용해지던 아이도. 수업 시간에 연애 이야기를 한다는 건 꽤 신기한 일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교실이 술렁술렁 소란해졌다. 신난 아이들과 다르게 나는 전날 밤 악몽을 꾸고 잠을 설친 상태였다. 꽉 쥔 손에 땀이 흥건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연애 이야기는 ‘퀴어’ 연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퀴어는 좁게는 성소수자를, 넓게는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전통적 이해에 도전하는 모든 이론·실천·관점·가치관·방법틀을 일컫는다. 퀴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수업을 설계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먼저 연애를 소재로 생각을 자유롭게 떠올릴 수 있도록 게임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둥그렇게 앉아 있다가 술래가 묻는 질문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자리를 옮겨 앉는 게임이었다. 연애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는 사람을 묻자, 반 정도가 일어나서 자리를 옮겼다. 연애나 사랑이 들어간 노래를 들어본 적 있는지 묻자 모든 아이들이 자리를 옮겼다. 게임을 마치자 훨씬 허용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머쓱해하던 아이들도 한결 더 편안한 표정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이들이 생각한 연애에 퀴어의 연애도 들어있을까.


그림책의 제목을 가린 채로 읽으며 수업을 이어갔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사랑'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주인공(화자)과 드레이크가 친해지고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는 장면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짧은 머리와 반바지 차림의 화자가 여자인 줄 알았던 아이들은 ‘남자끼리’라는 대사가 나오면서 화자가 남자라는 걸 알았을 때 놀라는 듯했다. 소란스러움을 그대로 두고 책을 마저 읽었다. 화자가 드레이크를 위한 노래를 불러주고 서로 장난을 나누자 아이들은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어 교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사로 인해 둘이 헤어져야 했을 때는 곳곳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기가 끝나기 직전, 이 책의 제목을 추측해보라 했다. 생각보다 더 빨리 정답을 맞혔다.

 “유치원생 때 이야기고, 두 인물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으니 제목이 첫사랑일 것 같아요.”

 서로 좋아하니까 사랑이다. 명료하고 당연한 문장이 교실을 통통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나도 맞힐 수 있었는데’ ‘그치 사랑이지’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꽉 쥔 손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퀴어, 그 중에서도 같은 성별의 연애. 학교에서 입 밖으로 내뱉는 걸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교과서에서는 사춘기가 되면 ‘이성’ 친구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서술한다. 연애의 감정은 나와 다른 성별에게만 느끼는 것이라고 전제한 표현이다. 아이들이 사과가 빨갛고, 바다가 넓다고 느끼는 것만큼 당연한 사실로 '동성에게 연애 감정을 가지는 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혹은 이해해볼 기회가 있었을까 . 

유엔은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는 유별하고 특이한 일이다. 그래서 퀴어 연애 수업을 구상하면서 두려웠다. 이 수업을 했다가 강력한 민원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내용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년이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별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퀴어 연애 수업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교직에 대한 회의가 몰아칠 때도 꺼지지 않는 마음의 온기가 되었다.


이어지는 연애 프로젝트 수업시간. 연인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활동을 했다. 이를테면, 애인이 친구와 아주 가깝게 지낸다면?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는 들려줬다면? 

 “이건 친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중요한데.”

“그냥 간단하게 여자애들은 남친의 여사친, 남자들은 여친의 남사친으로 생각하면 되잖아.”

 내가 끼어들기도 전에 다른 아이가 말했다.

 “아니지. 그림책에 나왔던 애도 있잖아. 그 사람들한테는 다르지.”

“아니, 그럼 그것도 간단하게 그 사람들은 알아서 남친의 남사친.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휘리릭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벙쪘다. 이렇게나 자연스러울 수 있는 거구나. 그림책 수업을 위해 냈던 용기가 훨씬 더 큰 온기가 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완벽히 달라졌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그런 수업을 했던 게 꿈이었나 의심이 들 만큼 많은 아이들이 여자에게는 남친 있냐, 남자에게는 여친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순간들은 영원히 기억 한편에 있다는 것을 안다. 떨어도 괜찮다고 발표해보라고 말해주셨던 4학년 때 선생님, 구령대 그늘에 앉아 나를 기다려줬던 친구. 20년쯤 지난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의 한 장면들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이런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세상에는 여러 사랑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교실에 있는 누군가 어느 날 문득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다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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