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투 댄스 과연 괜찮은가?
2023.06.18. 귤귤
때는 지난 운동회,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모인 자리인 만큼 학생들은 매우 신이 나 있었다. 학생들은 틈만 나면 춤을 췄고, 대부분은 요즘 유행하는 제로투 댄스였다.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하나 싶었지만 걷잡을 수 없이 많은 학생들이 습관처럼 한두 번씩 씰룩거렸기에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운동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MC분이 춤에 자신있는 학생들은 가운데로 나오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서 깔리는 BGM이 무려 제로투(이마짚)...! 아니, ‘초등’ ’학교’ 운동회에 제로투 댄스 BGM이라니, 세상이 미쳐돌아가는구나 싶었다. 3월부터 내가 어떻게 가르쳐온 학생들인데..! 성인지 감수성을 길러보겠다고 고군분투했던 지난 세월들이 스쳐 지나가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리 반 학생들 중에는 다행히(?) 제로투 댄스를 추는 학생들이 없었고 그랬기에 더 속이 상했다. 마치 청정구역이 오염된 기분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반에서도 '제로투 댄스'라는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운동회가 끝난 뒤 교실에서 게임을 하다가 벌칙 중 하나로 '무반주 댄스'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듣고 학생들은 '제로투 댄스?'라며 킥킥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지만 제로투 댄스는 여러 이유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니 추지 말라고 말해버리고 넘겼다. 그날은 그대로 마무리되었지만 내내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게 왜 그렇게 불편하고 학생들도 못 추게 하고 싶을까? ‘여러 이유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니 추지 말라’는 말은 과연 납득이 가능한가?
스스로 납득시킬 만한 답을 못 찾을 때 학생들이 길잡이가 되어준 적이 있었기에, 학생들과 이 주제로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제로투 댄스, 과연 괜찮은가?'
내 불편함이 가득 묻어나는 제목이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분명했다. 지금이야말로 성적대상화를 언급해야 할 때다.
👩🏫 "여러분은 제로투 댄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 "수치스러워요.", "추해요.", "꼴사나워요."
"웃겨요." "재미있고 장난이니까 괜찮아요."
👩🏫 "솔~직하게 제로투 댄스 춰본 사람! 왜 그 춤을 춘 거예요?" (매우 다정한 말투!!)
🧑🎓 "친구들 웃기려고요ㅋㅋ 토 나오게 하려고!"
👩🏫 "엥? 그 춤이 토 나오는 춤이에요?"
🧑🎓 "아니요!"
👩🏫 "그럼? 토 나오게 하려고 춘다면서!"
🧑🎓 "그 춤이 토 나오는 춤은 아닌데.. 아, 몰라요 제가 그 춤을 추면 애들이 토하려고 해요. 그게 재밌어요."
"이게 약간 드러운 느낌이 드는 춤이라 애들이 토하려고 하거든요 "
"맞아요! 맞아요! 혐오스러워요!!ㅋㅋㅋ"
"아, 이거 원래 19금 라이브 방송 뭐 아프리카? 이런 데서 나온 거래요."
👩🏫 "진짜?!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어?"
🧑🎓 "친구가 말해줬는데 뭐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춤 보면 쫌..."
"맞아요, 쫌 그래 보여요."
👩🏫 "음, 들은 말이 모두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춤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는 거죠? 여러분은 제로투 댄스를 보면, 그 춤의 동작을 보면 누가 떠오르나요?"
🧑🎓 "여자요! 약간 몸매를 강조하는..."
"저는 남자가 떠오르는데?! 거의 남자가 추는 것만 봤어요!"
👩🏫 "그럼 그 춤의 동작은 어떤 신체 부위를 강조하나요?"
🧑🎓 "엉덩이! 가슴!!"
👩🏫 "표정은 또 어떤가요?"
🧑🎓 "아...이상해요."
"남자가 춰도 여자가 떠올라요."

재밌어서 괜찮지만, 그럼에도 토 나오는 춤이 되는 이유. 또는 추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이 수치스러워지는 이유. 성적 대상화.
어려운 말이지만 몇몇 학생들이 느낀 불쾌감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성적 대상화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도 이 춤을 보면 기분이 나빴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며 학생들과 함께한 대화를 되짚어보았다. 가슴과 골반을 강조하며 과장하는 몸짓, 눈을 가늘게 뜨고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 여성의 몸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주로 남자가 춤을 추는 상황, 반대로 남자가 춤을 추는데도 자연스레 여성을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점과 불쾌하다는 친구들의 반응까지.
👩🏫 "이런 춤이 장난으로 계속해서 소비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요?"
🧑🎓 "...기분 나쁜 사람이 생겨요. 누군가를 성적으로만 생각하게 될 수도 있어요."
사실 이쯤 되니 일방적인 잔소리였던지라, 학생들의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래도 출래?”, “아니오”가 되긴 했다만, 그래도 ‘무조건 금지!’ 가 아니라 함께 고민해보는 과정을 가진 것이, 어렵지만 성적대상화에 관해 언급이라도 해본 것이 기뻤다. '학생들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는 상황을 하나하나 막을 수 있을까. 유해한 환경에 놓였을 때 잘 인지하고, 그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가르치자. 함께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혼자 골똘히 이런 생각을 하는데,
🧑🎓 "선생님! 우리 게임 벌칙에서 엉덩이로 이름쓰기도 좀 성적인 거 아닌가요?"
예능에서 벌칙을 수행하며 과하게 엉덩이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다 싶어 다음 시간엔 우리 반 벌칙 리스트를 정해보기로 했다!
번외)
그렇게 해서 정해진 우리 반 벌칙 리스트
< 조건 > 1.부끄러운 마음 들게 하지 않는 것 2.’한번’ 재밌게 넘길 수 있는 것 3.기본인권 건드리지 않는 것 • 3분 장기자랑 (노래, 춤 등) • 버피테스트 10번 • 3단 고음 도전 • 3명 웃기기 |
✔️ 벌칙 받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어요!✔️ 언제든지 추가하고 제안할 수 있어요! |

벌칙 자체가 없어야 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지만, 수업 활동 중 동기부여나 게임의 재미를 위해 벌칙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이런 조건과 함께라면 불편한 마음 없이 모두가 즐겁게 벌칙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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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투 댄스 과연 괜찮은가?
2023.06.18. 귤귤
때는 지난 운동회,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모인 자리인 만큼 학생들은 매우 신이 나 있었다. 학생들은 틈만 나면 춤을 췄고, 대부분은 요즘 유행하는 제로투 댄스였다.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하나 싶었지만 걷잡을 수 없이 많은 학생들이 습관처럼 한두 번씩 씰룩거렸기에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운동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MC분이 춤에 자신있는 학생들은 가운데로 나오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서 깔리는 BGM이 무려 제로투(이마짚)...! 아니, ‘초등’ ’학교’ 운동회에 제로투 댄스 BGM이라니, 세상이 미쳐돌아가는구나 싶었다. 3월부터 내가 어떻게 가르쳐온 학생들인데..! 성인지 감수성을 길러보겠다고 고군분투했던 지난 세월들이 스쳐 지나가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리 반 학생들 중에는 다행히(?) 제로투 댄스를 추는 학생들이 없었고 그랬기에 더 속이 상했다. 마치 청정구역이 오염된 기분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반에서도 '제로투 댄스'라는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운동회가 끝난 뒤 교실에서 게임을 하다가 벌칙 중 하나로 '무반주 댄스'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듣고 학생들은 '제로투 댄스?'라며 킥킥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지만 제로투 댄스는 여러 이유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니 추지 말라고 말해버리고 넘겼다. 그날은 그대로 마무리되었지만 내내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게 왜 그렇게 불편하고 학생들도 못 추게 하고 싶을까? ‘여러 이유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니 추지 말라’는 말은 과연 납득이 가능한가?
스스로 납득시킬 만한 답을 못 찾을 때 학생들이 길잡이가 되어준 적이 있었기에, 학생들과 이 주제로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제로투 댄스, 과연 괜찮은가?'
내 불편함이 가득 묻어나는 제목이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분명했다. 지금이야말로 성적대상화를 언급해야 할 때다.
👩🏫 "여러분은 제로투 댄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 "수치스러워요.", "추해요.", "꼴사나워요."
"웃겨요." "재미있고 장난이니까 괜찮아요."
👩🏫 "솔~직하게 제로투 댄스 춰본 사람! 왜 그 춤을 춘 거예요?" (매우 다정한 말투!!)
🧑🎓 "친구들 웃기려고요ㅋㅋ 토 나오게 하려고!"
👩🏫 "엥? 그 춤이 토 나오는 춤이에요?"
🧑🎓 "아니요!"
👩🏫 "그럼? 토 나오게 하려고 춘다면서!"
🧑🎓 "그 춤이 토 나오는 춤은 아닌데.. 아, 몰라요 제가 그 춤을 추면 애들이 토하려고 해요. 그게 재밌어요."
"이게 약간 드러운 느낌이 드는 춤이라 애들이 토하려고 하거든요 "
"맞아요! 맞아요! 혐오스러워요!!ㅋㅋㅋ"
"아, 이거 원래 19금 라이브 방송 뭐 아프리카? 이런 데서 나온 거래요."
👩🏫 "진짜?!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어?"
🧑🎓 "친구가 말해줬는데 뭐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춤 보면 쫌..."
"맞아요, 쫌 그래 보여요."
👩🏫 "음, 들은 말이 모두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춤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는 거죠? 여러분은 제로투 댄스를 보면, 그 춤의 동작을 보면 누가 떠오르나요?"
🧑🎓 "여자요! 약간 몸매를 강조하는..."
"저는 남자가 떠오르는데?! 거의 남자가 추는 것만 봤어요!"
👩🏫 "그럼 그 춤의 동작은 어떤 신체 부위를 강조하나요?"
🧑🎓 "엉덩이! 가슴!!"
👩🏫 "표정은 또 어떤가요?"
🧑🎓 "아...이상해요."
"남자가 춰도 여자가 떠올라요."
재밌어서 괜찮지만, 그럼에도 토 나오는 춤이 되는 이유. 또는 추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이 수치스러워지는 이유. 성적 대상화.
어려운 말이지만 몇몇 학생들이 느낀 불쾌감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성적 대상화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도 이 춤을 보면 기분이 나빴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며 학생들과 함께한 대화를 되짚어보았다. 가슴과 골반을 강조하며 과장하는 몸짓, 눈을 가늘게 뜨고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 여성의 몸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주로 남자가 춤을 추는 상황, 반대로 남자가 춤을 추는데도 자연스레 여성을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점과 불쾌하다는 친구들의 반응까지.
👩🏫 "이런 춤이 장난으로 계속해서 소비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요?"
🧑🎓 "...기분 나쁜 사람이 생겨요. 누군가를 성적으로만 생각하게 될 수도 있어요."
사실 이쯤 되니 일방적인 잔소리였던지라, 학생들의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래도 출래?”, “아니오”가 되긴 했다만, 그래도 ‘무조건 금지!’ 가 아니라 함께 고민해보는 과정을 가진 것이, 어렵지만 성적대상화에 관해 언급이라도 해본 것이 기뻤다. '학생들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는 상황을 하나하나 막을 수 있을까. 유해한 환경에 놓였을 때 잘 인지하고, 그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가르치자. 함께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혼자 골똘히 이런 생각을 하는데,
🧑🎓 "선생님! 우리 게임 벌칙에서 엉덩이로 이름쓰기도 좀 성적인 거 아닌가요?"
예능에서 벌칙을 수행하며 과하게 엉덩이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다 싶어 다음 시간엔 우리 반 벌칙 리스트를 정해보기로 했다!
번외)
그렇게 해서 정해진 우리 반 벌칙 리스트
1.부끄러운 마음 들게 하지 않는 것
2.’한번’ 재밌게 넘길 수 있는 것
3.기본인권 건드리지 않는 것
✔️ 벌칙 받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어요!
✔️ 언제든지 추가하고 제안할 수 있어요!
벌칙 자체가 없어야 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지만, 수업 활동 중 동기부여나 게임의 재미를 위해 벌칙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이런 조건과 함께라면 불편한 마음 없이 모두가 즐겁게 벌칙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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