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2023.5.29. 몽크
“뒤에 있는 친구, 얼른 남학생 줄에 서.”
‘나한테 한 말인가? 나 여잔데…….’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다. 가정방문을 통해 동화책 전집을 파는 업체가 있었고, 그 전집을 사면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에 업체에서 진행하는 체험학습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체험학습 당일, 선생님은 모인 아이들에게 여학생과 남학생 각각 한 줄씩 줄을 서라고 말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쭈뼛거리고 있던 나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남학생 줄 맨 끝에 섰다.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고 키가 큰 내 모습이 남자아이 같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선생님, 저 여자예요.”라고 말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그런 말을 할 재주도 없던 나는 그날 그렇게 하루종일 남학생 줄에 서서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어디에 가서 뭘 봤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남학생 줄에 서서 선생님과 남학생들을 쫓아다니느라 무척 곤혹스러웠던 기억,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그냥 다음부터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당연히 다음, 그다음 체험학습은 가지 않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니 그때 그 경험이 내겐 큰 상처였던 모양이다. 그 후로도 이런 일들은 자주 일어났다.
유치원 놀이 시간에 여자 친구들은 낡은 인형과 소꿉놀이 가방을 가지고 유치원 한구석에서 가족 역할놀이를 했다. 남학생들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공을 가지고 뛰어놀고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어 싸움놀이를 했다. 나는 엄마 목소리를 흉내내며 역할 놀이하는 데엔 흥미가 없었고 공놀이나 블록 만들기를 하고 싶었지만 끝내 할 수 없었다. 누가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마치 짠 듯이 여학생과 남학생은 서로 다른 놀이를 했고 그 ‘규칙’을 어기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여자라 공놀이와 블록 만들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항상 속상했지만 내 마음을 어른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던 나는 마치 놀이에 관심이 없는 아이인 양 책 코너에 가서 책을 읽었다.
여전히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한 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으레 체육 시간마다 여학생은 운동장 한쪽에서 피구를 하고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어느 날 피구를 하다가 내 옆에 굴러온 축구공을 본 순간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있는 힘껏 드리블을 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내달렸다. 우리 반에서 축구를 제일 잘한다는 남학생을 제치고 골을 넣었을 때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 기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사유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남학생 줄에 섰을 때의 당혹감, 성별에 따라 나누어진 놀이의 보이지 않는 구분선을 넘을 수 없을 때의 좌절감을 설명할 말을 오랜 시간 찾지 못했다.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한 채로, 오직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끊임없이 질문해 왔고 질문들이 만든 길을 따라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를 통해 진짜 나 자신에게 다다르게 되었다.
성별 고정관념에 의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그로 인한 불편함, 그것이 바로 내가 찾던 답이었다. 여학생이라면 긴 머리에 치마를 좋아하고 인형놀이를 하며 축구 대신 피구를 하는 일이 왜 ‘당연’한지 끊임없이 자문하던 끝에야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아, 나는 틀리지 않았구나.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너무 오래 참아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상정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아니다. 여전히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을 고수하고, 수업을 공개하는 날엔 인터넷에서 구입한 남성용 수트를 입는다. 나긋나긋한 말투도 쓰지 않으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혼을 내기도 한다. 마흔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과 뛰어논다. 매일 뛰어야 하니 당연히 바지를 입고 운동화만 신는다.
아이들은 궁금해한다. 선생님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작년 우리반 어린이가 그린, 있는 그대로의 나
“선생님 그런데요, 선생님 남자예요? 여자예요?”
“3반 선생님 남자라고! 머리 짧고 맨날 바지만 입잖아.”
“목소리는 여자 같은데?”
나에게 직접 물어오는 것은 다반사고 다른 반 아이들까지 복도에 모여서 토론을 하곤 한다. 성평등 수업을 하기 전에는 ‘알아서 뭐하냐’, ‘그런 질문은 예의가 아니다’ 등으로 넘겼지만 그게 충분하지 않다는 건 늘 알고 있었다. 불편하기도 했다.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왜 저리도 중요할까.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어야만 여자 선생님인가. 내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나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성평등 교육의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지낸 지 십년이 넘어가니, ‘우리 반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인데 여자같이 예쁘장하다'던 아이의 말을 굳이 전하는 보호자님의 인사도 이젠 껄껄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어떤 순간은 아직도 도저히 그냥 웃어넘겨지지가 않는다. 1학년 필독서인 <선생님은 몬스터>를 읽고 선생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면 학생들은 치마를 입고 긴 머리에 머리띠를 한 선생님을 그려서 가져온다. 특히 여학생 열에 여덟이 그렇게 그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별 고정관념이 이들에게 어떤 공동체성으로 자리잡아버린 것 같아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자석 글자, 자음·모음 스티커, 그림 글자, 각종 그림책 등을 동원하여 이제 받침 없는 글자는 다 읽게 된 동시에 성별 고정관념에 강하게 지배받고 있는 우리 1학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어린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성평등 교육의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은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수업 프레젠테이션을 수업 자료 폴더에서 꺼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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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2023.5.29. 몽크
“뒤에 있는 친구, 얼른 남학생 줄에 서.”
‘나한테 한 말인가? 나 여잔데…….’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다. 가정방문을 통해 동화책 전집을 파는 업체가 있었고, 그 전집을 사면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에 업체에서 진행하는 체험학습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체험학습 당일, 선생님은 모인 아이들에게 여학생과 남학생 각각 한 줄씩 줄을 서라고 말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쭈뼛거리고 있던 나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남학생 줄 맨 끝에 섰다.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고 키가 큰 내 모습이 남자아이 같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선생님, 저 여자예요.”라고 말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그런 말을 할 재주도 없던 나는 그날 그렇게 하루종일 남학생 줄에 서서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어디에 가서 뭘 봤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남학생 줄에 서서 선생님과 남학생들을 쫓아다니느라 무척 곤혹스러웠던 기억,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그냥 다음부터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당연히 다음, 그다음 체험학습은 가지 않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니 그때 그 경험이 내겐 큰 상처였던 모양이다. 그 후로도 이런 일들은 자주 일어났다.
유치원 놀이 시간에 여자 친구들은 낡은 인형과 소꿉놀이 가방을 가지고 유치원 한구석에서 가족 역할놀이를 했다. 남학생들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공을 가지고 뛰어놀고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어 싸움놀이를 했다. 나는 엄마 목소리를 흉내내며 역할 놀이하는 데엔 흥미가 없었고 공놀이나 블록 만들기를 하고 싶었지만 끝내 할 수 없었다. 누가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마치 짠 듯이 여학생과 남학생은 서로 다른 놀이를 했고 그 ‘규칙’을 어기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여자라 공놀이와 블록 만들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항상 속상했지만 내 마음을 어른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던 나는 마치 놀이에 관심이 없는 아이인 양 책 코너에 가서 책을 읽었다.
여전히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한 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으레 체육 시간마다 여학생은 운동장 한쪽에서 피구를 하고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어느 날 피구를 하다가 내 옆에 굴러온 축구공을 본 순간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있는 힘껏 드리블을 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내달렸다. 우리 반에서 축구를 제일 잘한다는 남학생을 제치고 골을 넣었을 때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 기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사유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남학생 줄에 섰을 때의 당혹감, 성별에 따라 나누어진 놀이의 보이지 않는 구분선을 넘을 수 없을 때의 좌절감을 설명할 말을 오랜 시간 찾지 못했다.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한 채로, 오직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끊임없이 질문해 왔고 질문들이 만든 길을 따라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를 통해 진짜 나 자신에게 다다르게 되었다.
성별 고정관념에 의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그로 인한 불편함, 그것이 바로 내가 찾던 답이었다. 여학생이라면 긴 머리에 치마를 좋아하고 인형놀이를 하며 축구 대신 피구를 하는 일이 왜 ‘당연’한지 끊임없이 자문하던 끝에야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아, 나는 틀리지 않았구나.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너무 오래 참아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상정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아니다. 여전히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을 고수하고, 수업을 공개하는 날엔 인터넷에서 구입한 남성용 수트를 입는다. 나긋나긋한 말투도 쓰지 않으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혼을 내기도 한다. 마흔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과 뛰어논다. 매일 뛰어야 하니 당연히 바지를 입고 운동화만 신는다.
아이들은 궁금해한다. 선생님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작년 우리반 어린이가 그린, 있는 그대로의 나
“선생님 그런데요, 선생님 남자예요? 여자예요?”
“3반 선생님 남자라고! 머리 짧고 맨날 바지만 입잖아.”
“목소리는 여자 같은데?”
나에게 직접 물어오는 것은 다반사고 다른 반 아이들까지 복도에 모여서 토론을 하곤 한다. 성평등 수업을 하기 전에는 ‘알아서 뭐하냐’, ‘그런 질문은 예의가 아니다’ 등으로 넘겼지만 그게 충분하지 않다는 건 늘 알고 있었다. 불편하기도 했다.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왜 저리도 중요할까.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어야만 여자 선생님인가. 내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나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성평등 교육의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지낸 지 십년이 넘어가니, ‘우리 반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인데 여자같이 예쁘장하다'던 아이의 말을 굳이 전하는 보호자님의 인사도 이젠 껄껄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어떤 순간은 아직도 도저히 그냥 웃어넘겨지지가 않는다. 1학년 필독서인 <선생님은 몬스터>를 읽고 선생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면 학생들은 치마를 입고 긴 머리에 머리띠를 한 선생님을 그려서 가져온다. 특히 여학생 열에 여덟이 그렇게 그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별 고정관념이 이들에게 어떤 공동체성으로 자리잡아버린 것 같아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자석 글자, 자음·모음 스티커, 그림 글자, 각종 그림책 등을 동원하여 이제 받침 없는 글자는 다 읽게 된 동시에 성별 고정관념에 강하게 지배받고 있는 우리 1학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어린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성평등 교육의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은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수업 프레젠테이션을 수업 자료 폴더에서 꺼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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