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세모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 헤엄



세모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2023.5.22.  헤엄

 

  “아이고, 내 꼬추. 선생님 저 꼬추 아파요!”

수업 시간, 교실을 넓게 쓰기 위해 책상을 뒤로 밀던 중 오도 가도 못하게 책상 사이에 끼어버린 동글이(가명)는 아래춤을 부여잡고 나와 교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동글이가 아프다면서도 웃으니까 동글이 쪽으로 책상을 밀던 친구도 웃고 구경하던 친구도 웃고 모든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만 빼고. “동글아,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다들 듣기에 편한 이야기를 해야지.” 괜히 표정을 굳히고 말하지만 내 말이 동글이에게 가 닿지 않았다는 것, 너무 잘 알겠다. 작년에 한창 '남성 성기를 농담 소재로 쓰는 방식으로 남성성을 과하게 드러내는 사회'에 관해 고민하며 수업자료를 만들고자 분투했다. 그런데 웬걸, 우리 교실에서 꼬추꼬추거리는 어린이에게 이렇게 두루뭉술한 잔소리가 최선이라니....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든 이 어린이는 우리반 반장이다.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목표로 하는 동글이는 사설 축구교실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이름과 등번호가 커다랗게 박힌 유니폼을 매일같이 입고 등교해서 아침마다 달려와 어제 훈련의 결과가 어땠는지 알려주곤 한다. 중학생 형들과 함께한 시합에서 골을 몇 개나 넣었는지, 어떤 훈련을 하다가 어떻게 다쳤는지, 자기가 리프팅을 얼마나 잘하는지. "와, 동글이 대단한데? 나중에 축구선수 되면 선생님 자랑해야겠다." 한 마디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져서 체육 수업에서도 늘 시범보이겠다고 자원한다. 힘이 세고 달리기가 빠른 것을 뽐내고 싶어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기꺼이 도와주려고 한다. 담임교사로서 든든하고 기특한 맘이 든다. 덧붙이는 한 마디만 아니면.

 

  “(친구가 나누어주던 수학 익힘책을 가져가며) 여자가 뭐 이런 걸 들어.”

 

아뿔싸. ‘아웃박스: 성별 박스에서 벗어나기’ 수업을 한 게 얼마 전이었다. 냅다 눈을 홉뜨고 동글이를 쳐다보면 “아 맞다 맞다. 남자 여자 그런 거 말고. 내가 도와 줄게” 하며 말을 고쳤다. 동글이는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정말 그냥 친구를 도와 주고 친구가 자신에게 고마워 했으면 좋겠고, 나아가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싶고. 그뿐이었을 것이다. 모든 어린이가 그렇겠지만, 동글이는 유난히 주변 사람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는 것을 큰 기쁨으로 안다. “엄마한테 머리 기른다고 했는데, (중략),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하면서 등짝을 쫙 맞았어요.” 뾰족하고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연기를 하면 주위 친구들은 자지러지게 웃는다. 재미있는 춤을 출 때도 있다. “선생님 저 춤 출 줄 안다요?" 동글이는 팔을 번쩍 들어 뒤통수에 대고 엉덩이를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표정을 그윽하게 짓는 것은 덤이다. 축구교실 형들이랑 봤다던 틱톡 영상 속 제로투를 추는구나. 나는 또 눈을 세모로 뜨게 된다. 

  “선생님은 그런 춤 싫어해.” 

곧장 춤을 멈춘다. 선생님을 웃게 해주고 싶어서 춘 건데 선생님이 싫다고 하니까. 얼떨떨해 하는 동글이를 보며 나는 어쩐지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 춤을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로투가 어쩌다 나온 춤인지 어찌 단숨에 설명하겠는가. 아무리 어린사람은 낮은 사람이 아니라지만, 아홉 살 어린이에게 성적대상화를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쉽고 직관적인 말은 없을까, 더 와 닿는 활동이 있을까 고르고 골라 보지만 묘책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변명거리를 한참 늘어놔보아도, 칭찬 받을 거라는 기대에 차서 춤을 추는 어린이에게 돌려줄 말로 선택한 것이 고작 ‘선생님은 그런 춤 싫어해’라니, 나 스스로가 좀 미워졌다.


앞서 언급한 수업 자료를 아웃박스 멤버들과 구상하다 보면 말미엔 꼭 이런 다짐을 나누게 된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어린이에게 죄책감을 주고 싶지 않다. 서로 어울려 잘 공존하기 위한 예민함을 가르치고 싶다.' 나혼자 이만큼 예민해진 눈으로 교실을 바라볼 때 어린이의 어떤 언행이 불편하거나 부적절하다면, 그 모습은 전부 어른들에게서, 그리고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보고, 배우고, 따라하고.

 

꿈을 이루어 축구선수가 된 동글이


그래서 동글이가 밉지 않다. 동글이가 남성 성기 이야기를 큰 목소리로 웃으며 하는 것이나 선생님의 옷차림을 칭찬하는 것,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손을 빌려주는 것, 이 모든 말과 행동에는 교실에 웃음과 기쁨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며, 나아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해’라는 학습이 반영되어 있다. 세모눈을 하고 바라봐야 할 것은 동글이가 아니다. 대신 나는 어린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세모눈으로 바라볼 생각이다. 다음에 또다시 동글이 앞에서, 또다른 어린이 앞에서 말문이 막힐 때에 어린이의 잘못이라고 지적하거나 '선생님은 그거 싫어' 같은 말로 에둘러 피하고 넘어가지 않으리라. 저학년을 위한 '성적 행동+성적 대상화' 수업도 만들어 보리라.

어린이가 더 안전하고 동그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예민한 어른이 되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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