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닿으려는 노력
- 교사와 학생을 가로막는 장애물 이야기
2023.5.7. 뿌리
해외한국학교에 오게 되었다. 막연하게 꿈꾸던 해외살이를 할 수 있다는 점, 여행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루하루를 색다르게 채워넣을 수 있다는 기대로 부풀었다. 이때는 몰랐다. 나를 지탱하던 수많은 것들과 끊어진단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과 이 도시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겨울이었던 한국을 떠나 여름나라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즐거웠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낯선 말이 주변을 날아다니며 내 세상을 뒤덮고, 뜨거운 햇살과 눅진한 공기로 피로해져도 다 새롭기만 했다. 언젠가는 그 신선함이 익숙함으로 바뀔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익숙해지기란 마음먹은 대로 금방 뚝딱! 하고 되는 게 아니었다.
다른 문화에 길들여진 학교와 어린이들에게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했던 대로 수업하면 그 내용이 흡수되지 않고 교실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일쑤였다. 자주 당황스러웠고 조바심이 났다. 언어, 문화, 학교문화의 차이라는 두세 개의 벽이 항상 서로를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학급세우기를 시도해봤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학생들에게 가닿으려고 노력했어야 했나보다. 우리 사이의 벽을 걷어내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보조장치를 덧대거나 또다른 길을 만들어내는 노력. 이제까지 여러 번 해왔던 학급세우기였지만, 거기에 과연 어린이들의 진짜 마음과 생각이 담겼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학급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더 높은 벽을 세운 건 아니었는지. 나와 학생들을 가로막고 있던 또다른 장애물은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러자니 떠오르는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학부 시절 교육실습 중 참관했던 수업, 여러 방언을 배우고 역할놀이를 하는 차시였다. 즐거운 활동이 이어졌고 학습목표에도 잘 도달했다. 소감발표 때도 학생들이 유쾌하게 방언을 섞어 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
"소감을 발표할 때는 장난치지 말고 표준어를 사용해야지!"
방언을 따라하는 것을 그저 장난으로 여기신 거다. 학생들은 다시 서울말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잘 이루어진 수업처럼 보였지만 지방 출신이었던 나는 조금 놀랐다. 물론 이제 서울말도 잘 쓸 수 있게 됐지만, 나의 기본값은 사투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난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교실에서는 언제 사투리가 튀어나올지 몰라 더더욱 조심하는 교사가 되었다. 교실에 온전히 속해 있지 않고 잠깐 수업만 보던 실습생이었음에도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혔는데, 그 어린이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만약 지방에 살다가 전학 온 학생이라면? 보호자가 사투리를 쓰는 학생이라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교사와 학생 사이에 벽으로 자라난다.
우리 교실은 어떨까? 누구나 오고 싶은, 모두를 포용하는 교실일까? 나는 규칙을 빨리 받아들이고 잘 적응하는 어린이들을 ‘정상’으로 여기고 그렇지 못한 어린이들은 얼른 바꿔놓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저학년 담임 시절엔 어린이들이 뻑하면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교사가 뭐 어려운 걸 시키는 것도 아니고, 통합교과 시간에 재밌는 활동도 잔뜩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는 데다가 입학적응 시간까지 따로 주는데도 적응을 못하다니.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거지?'
내가 겪어보지 못해서 몰랐다. 타지에서 낯선 환경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아파가며 끙끙대고 있으니 이제야 보이는 것이다, 느린 어린이들의 마음이. 그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별 거 아닌 것'으로 흘러가 버렸을까. 그러는 동안 어린이들과 나 사이에 얼마나 많은 벽이 세워졌을까.
게다가 여기는 외국이다. 한국어가 모두의 제1언어가 아닌데도 교실의 위계질서 꼭대기에 있는 교사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한다. 자연스레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잘 따르고, 제1언어가 다른 학생들이 한 박자 늦게 따라하게 된다. 이러한 작은 속도 차이가 만들어내는 감각이 누적되면 그게 곧 장애물이 된다. 질서를 지키기 싫어서가 아니라 단지 제1언어가 한국어가 아닐 뿐인데, 곧장 이해하지 못한 탓에 씌워지는 낙인이 있었다. 처음엔 이 속도차를 줄일 방법을 고민했지만, 고민할수록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30여 명 있는 교실에서 속도의 차이는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제는 빠른 것, 잘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였다. 교실에서 당연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사실 '누구나 다른 속도를 갖는다는 것'이었는데.
아웃박스 활동을 하면서 나는 그래도 성인지감수성 좀 높은 교사이지 않나, 세상 문제에 이렇게 열내고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뭐 좀 나은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반에는 혐오 표현이 없다고, 성평등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고 콧대도 좀 높이고.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서서 늦게나마 내 안의 ‘정상’에 대한 인식들을 조각내어 본다. 늘 학급세우기의 프레임을 짜두었고, 학생들이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을 때 완성되었다고, 그게 정상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프레임 역시 하나의 벽이었다는 것을 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다 보면 교실의 장애물은 계속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장애물을 헐기 위해, 우선 조급했던 마음부터 느긋이 먹어보기로 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주변의 온도와 내가 맞춰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얼른 식지 않는다고, 얼른 뜨거워지지 않는다고 현재의 상태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건 좀 이르지 않나, 하고. 내 마음이 느긋해지면 어린이들의 제각기 다른 속도도 다채로움으로 바라봐줄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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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닿으려는 노력
- 교사와 학생을 가로막는 장애물 이야기
2023.5.7. 뿌리
해외한국학교에 오게 되었다. 막연하게 꿈꾸던 해외살이를 할 수 있다는 점, 여행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루하루를 색다르게 채워넣을 수 있다는 기대로 부풀었다. 이때는 몰랐다. 나를 지탱하던 수많은 것들과 끊어진단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과 이 도시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겨울이었던 한국을 떠나 여름나라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즐거웠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낯선 말이 주변을 날아다니며 내 세상을 뒤덮고, 뜨거운 햇살과 눅진한 공기로 피로해져도 다 새롭기만 했다. 언젠가는 그 신선함이 익숙함으로 바뀔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익숙해지기란 마음먹은 대로 금방 뚝딱! 하고 되는 게 아니었다.
다른 문화에 길들여진 학교와 어린이들에게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했던 대로 수업하면 그 내용이 흡수되지 않고 교실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일쑤였다. 자주 당황스러웠고 조바심이 났다. 언어, 문화, 학교문화의 차이라는 두세 개의 벽이 항상 서로를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학급세우기를 시도해봤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학생들에게 가닿으려고 노력했어야 했나보다. 우리 사이의 벽을 걷어내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보조장치를 덧대거나 또다른 길을 만들어내는 노력. 이제까지 여러 번 해왔던 학급세우기였지만, 거기에 과연 어린이들의 진짜 마음과 생각이 담겼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학급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더 높은 벽을 세운 건 아니었는지. 나와 학생들을 가로막고 있던 또다른 장애물은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러자니 떠오르는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학부 시절 교육실습 중 참관했던 수업, 여러 방언을 배우고 역할놀이를 하는 차시였다. 즐거운 활동이 이어졌고 학습목표에도 잘 도달했다. 소감발표 때도 학생들이 유쾌하게 방언을 섞어 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
"소감을 발표할 때는 장난치지 말고 표준어를 사용해야지!"
방언을 따라하는 것을 그저 장난으로 여기신 거다. 학생들은 다시 서울말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잘 이루어진 수업처럼 보였지만 지방 출신이었던 나는 조금 놀랐다. 물론 이제 서울말도 잘 쓸 수 있게 됐지만, 나의 기본값은 사투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난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교실에서는 언제 사투리가 튀어나올지 몰라 더더욱 조심하는 교사가 되었다. 교실에 온전히 속해 있지 않고 잠깐 수업만 보던 실습생이었음에도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혔는데, 그 어린이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만약 지방에 살다가 전학 온 학생이라면? 보호자가 사투리를 쓰는 학생이라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교사와 학생 사이에 벽으로 자라난다.
우리 교실은 어떨까? 누구나 오고 싶은, 모두를 포용하는 교실일까? 나는 규칙을 빨리 받아들이고 잘 적응하는 어린이들을 ‘정상’으로 여기고 그렇지 못한 어린이들은 얼른 바꿔놓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저학년 담임 시절엔 어린이들이 뻑하면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교사가 뭐 어려운 걸 시키는 것도 아니고, 통합교과 시간에 재밌는 활동도 잔뜩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는 데다가 입학적응 시간까지 따로 주는데도 적응을 못하다니.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거지?'
내가 겪어보지 못해서 몰랐다. 타지에서 낯선 환경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아파가며 끙끙대고 있으니 이제야 보이는 것이다, 느린 어린이들의 마음이. 그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별 거 아닌 것'으로 흘러가 버렸을까. 그러는 동안 어린이들과 나 사이에 얼마나 많은 벽이 세워졌을까.
게다가 여기는 외국이다. 한국어가 모두의 제1언어가 아닌데도 교실의 위계질서 꼭대기에 있는 교사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한다. 자연스레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잘 따르고, 제1언어가 다른 학생들이 한 박자 늦게 따라하게 된다. 이러한 작은 속도 차이가 만들어내는 감각이 누적되면 그게 곧 장애물이 된다. 질서를 지키기 싫어서가 아니라 단지 제1언어가 한국어가 아닐 뿐인데, 곧장 이해하지 못한 탓에 씌워지는 낙인이 있었다. 처음엔 이 속도차를 줄일 방법을 고민했지만, 고민할수록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30여 명 있는 교실에서 속도의 차이는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제는 빠른 것, 잘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였다. 교실에서 당연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사실 '누구나 다른 속도를 갖는다는 것'이었는데.
아웃박스 활동을 하면서 나는 그래도 성인지감수성 좀 높은 교사이지 않나, 세상 문제에 이렇게 열내고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뭐 좀 나은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반에는 혐오 표현이 없다고, 성평등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고 콧대도 좀 높이고.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서서 늦게나마 내 안의 ‘정상’에 대한 인식들을 조각내어 본다. 늘 학급세우기의 프레임을 짜두었고, 학생들이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을 때 완성되었다고, 그게 정상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프레임 역시 하나의 벽이었다는 것을 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다 보면 교실의 장애물은 계속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장애물을 헐기 위해, 우선 조급했던 마음부터 느긋이 먹어보기로 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주변의 온도와 내가 맞춰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얼른 식지 않는다고, 얼른 뜨거워지지 않는다고 현재의 상태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건 좀 이르지 않나, 하고. 내 마음이 느긋해지면 어린이들의 제각기 다른 속도도 다채로움으로 바라봐줄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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