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그 짧은 치마 입은 아이, 선생님 반이에요?" - 쨈


"그 짧은 치마 입은 아이, 선생님 반이에요?"

-제자의 외모강박 앞에 선 모든 (꼰대)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함께 나누고픈 고민을 담아


2023.05.01. 쨈

※본문에 등장하는 어린이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까끌거린 지는 꽤 되었다. 내 모나고 예민한 성격을 아무리 반성해 봐도 이건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여 선생이 예쁘게 좀 입고 다니지 그래. 화장도 좀 하고.”
“선생님은 애가 없으셔서 잘 모르실 거예요.”
“선생님 페미예요?”

이러니 내가 안 까끌거리고 배겨? 덕분에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늘 긴장 상태였다. 동료 교사, 보호자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그랬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면 우리 반에 '요주의 유튜버'를 구독하는 학생이 있는지, 혐오적인 표현을 일삼는 학생이 있진 않은지 파악하느라 미어캣처럼 굴었다.


그러던 중 올해는 아이돌이 꿈이라는 제자를 만났다, 지윤이. 수업 시간에는 내내 거울만 보고, 급식을 먹을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학생이다. 날이 아직 추운데도 치마는 지나치게 짧았다. 교감선생님께서 내게 '그 짧은 치마를 입은 아이, 쨈 선생님 반이냐' 할 때는 올 것이 왔다 싶었다. 내가 담임이라 잘됐다며, 남자 선생님이 담임이었으면 아주 곤란할 뻔했다고 덧붙이셨다. 학생과도 상담해 보고, 보호자와도 통화를 좀 해 보라고.


예, 예,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머리가 아팠다. 솔직히는, 그 학생이 내 눈에도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 옆 반에 누가 잘생겼다, 하는 식의 말은 모두 지윤이 입에서만 나왔다. 성별에 관계없이 잘 어울려 놀고, 활발한 성향을 가진 우리 반(이렇게 만들기 위해 내가 3월 내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의 다른 어린이들한테까지 영향을 미칠까봐 지레 경계하는 중이었다. 그 짧은 치마나 어른을 흉내내는 옷차림도, 수업 시간 내내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묶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것도, 급식도 마스크 쓴 채로 깨작거리기만 하다가 그대로 버리는 것도 모두 참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 학생을 못 견디겠는 이유가 꼰대라서인지, 페미니스트여서인지, 아니면 꼰대 페미니스트여서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나의 모든 혼란과 까끌거림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마치 당연한 듯 그 학생 탓을 했다. 대체 왜 저러지. 왜 저렇게 외모에 집착을 하지. 세상에 외모 말고도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아깝게 그걸 다 놓치고! 그러다가 곧 보호자 탓을 했다. 아니, 애가 저런 옷을 입고 학교에 가겠다고 나서는데 그걸 그냥 보내나. 초등학생한테 대체 왜 저런 옷을 사 주지? 그러다가 결국은 또 세상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돌이라고 아직 어린애들한테 화장시키고 짧은 옷을 입게 하니까 만 11세 밖에 안 된 초등학생이 밥도 다 안 먹고 저러는 거 아니냐고, 여자애들한테 외모강박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기나 하냐고.

 

그러나 꼰대일지언정 꼰대처럼 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석대로 알림장에 적었다. “학교에는 원활한 교육활동과 안전을 위해 단정하고 편한 복장으로 오도록 합시다.” 그럼에도 지윤이는 꿋꿋하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짧은 치마를 입고 왔고, 나는 마음이 불편해서 도저히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 번이나 “지윤아.” 하고 불렀다가 그 학생이 네? 하고 대답하면 아니라고 얼버무리기도 했다. 머리카락만 쥐어뜯다가 나는 결국 아웃박스 홈페이지에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몸 교육! 그래, 수업을 하자.

 

“몸은 그냥 몸이다” 1차시 활동지를 나누어 주었다. 내 몸에 대해서 써 보자는 말에 망설임 없이 금세 연필을 드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한참을 머뭇거리는 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지윤이는 그 중에서도 무언가 쓰기까지 가장 오래 걸렸다. 다른 친구들과 내용을 공유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도 한사코 활동지를 가리고 책상에 엎드리다시피 붙어 있었다. 외모를 평가하는 영상을 보고 나서도 어떤 남학생들은 대번에 “얼평은 나쁘다”고 이야기하는데, 외모에 관심이 많은 학생일수록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이어지는 외모 꾸밈에 대한 이야기에는 다들 관심이 많아서 모두 수업에 진지하게 참여했다.

 




수업이 끝나고 걷은 지윤이의 활동지는 특히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했다. 머리카락, 피부, 눈, 코, 턱, 다리, 키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주근깨가 있고, 너무 작고, 너무 크고, 너무 두껍고 아무튼 그렇다고. 다른 학생들의 활동지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지윤이와 학생들에게 미안해진다. 이건 너희들 탓이 아닌데, 나는 치사하게 다 너희들 탓으로 하고 미워하고 싶었다. 너희는 그런 생각들을 다 어디에서 배웠을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나 하나인데, 실제로 가르치는 유튜브, 인터넷, TV, 아이돌, 어른, 또래들은 너무 많았다. 그 거대한 세상의 가르침을 깨려니 나도 이렇게 막막한데, 너희가 그걸 배우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텐데.

 

다음 날도 여전히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는 뉴진스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따라하는 지윤이를 보면서, 조용히 몸교육 2차시 수업을 준비한다. 

우리는 느리지만 더 멀리, 함께 가야 하니까.



                                                                                                                                                                                                             

<몸은 그냥 몸이다> 수업 시리즈 1편 링크:

https://outbox.kr/archiv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1775435&t=board&category=00n614J1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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