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아빠랑 안 사는 애도 할 말은 많아서 - 초식공룡

아빠랑 안 사는 애도 할 말은 많아서

 

23.04.24. 초식공룡


열세 살 봄이었나, 아빠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던 때가. 아빠는 직장 때문에 차로 서너 시간 떨어진 생경한 도시로 떠나갔다. 처음 몇 주간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정말 슬펐다. 그 외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른들이 아빠는 뭐하냐고 묻거나 친구들이 주말에 아빠랑 안 놀았냐고 물으면 같이 안 산다고, 일 때문에 멀리 가셨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이럴 때는 대충 얼버무리는 게 최선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는데 ‘아빠랑 떨어져 산다’는 사실에는 다양한 주관적 해석이 덧붙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까닭이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내가 불쌍한 애로 보인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물론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은 노골적인 말에 비하면 무척 다정한 편에 속했지만.
“너 아빠랑 안 살아? 헐, 완전 불쌍하다.”
“엄마랑만 있어서 너무 무르게 클까 걱정이네.”
“아빠에 대한 애정 결핍이 있는 애들이 커서 이상한 남자랑 결혼한대, 조심해.”

이후로는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게 영 껄끄러웠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점점 말수는 줄고 머릿속은 바빠졌다. 친구들이 주말에 가족들이랑 얼마나 재밌는 일을 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주말에 본 예능 프로그램이나 최근 나온 아이돌 노래로 화제를 돌릴 궁리를 하면서.

 

나도 주말에 재밌는 거 많이 했는데. 엄마랑 언니랑 카레도 만들고 자전거도 타러 나갔다. 영화를 보러 가는 날도 있었고 소파에 누워 꼭 안고 낮잠을 자는 날도 있었다. 텃밭에서 어린 상추를 따다가 쌈장 듬뿍 넣어 밥을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아빠는?’이라고 물어볼까 내 주말은 늘 시시한 날들이 되었다. 생계를 책임지는 아빠와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만나 비로소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낡은 믿음은 있었던 일도 없는 일로 만들었다. 

'우씨, 나도 할 말 많은데!'

지금 교실에서도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 신나게 떠들다가도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말수가 적어지는 순간. 어린이날에 엄마 아빠랑 뭐 할 거냐는 물음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 그런 순간들은 아주 짧은 찰나이면서도 매일 같이 반복된다. 어린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될 땐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본다. 열세 살의 나는 가족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았다. ‘누구랑’ 했는지만 묻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누구랑’ 했는지 밝히지 않아도 되는 가족 수업을 하면 되겠다! 가족은 누구랑 이루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도 중요하다. 함께 보내는 시간과 서로 주고받는 마음이야말로 가족을 이루는 핵심 아닐까.

 

바로 수업을 구상했다. 가족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그림책 한 권과 가족 소개 책자를 준비했다. 소개 책자에는 ‘우리 가족이 자주 하는 말은’, ‘최근 우리 가족이 제일 크게 웃었던 일은’, ‘우리 가족의 취미는’과 같이 구성원을 밝히지 않고도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실었다.


(수업에 사용한 그림책)


최근에 우리 가족이 제일 크게 웃은 일로, 엄마가 운동하다 침대에 엉덩방아를 찧은 사건을 쓴 어린이도 있었고 다같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을 때를 고른 어린이도 있었다. 전자처럼 가족 구성원이 드러나든, 후자처럼 드러나지 않든, 모두 자연스러웠다. 몰래 핸드폰을 쓰다 딱 걸린 일이나 학원 숙제를 한참이나 미룬 게 발각된 일처럼 어린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도 마구 쏟아졌다. 키득거렸다가 배꼽 잡고 쓰러졌다가 때로는 어린이의 서러움을 나누기도 하면서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에피소드 자체에 빠져들었다.

(어린이들이 만든 가족 소개 책자)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함을 선사하고 싶었던 그 어린이는 자기 가족을 한 마디로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소개했다. 집에서 사랑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가족의 취미는 집안일이고 가족 모두 이것저것 잘 만들고 고치는 ‘만능손’이라고 했다. 가족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으며 무척 즐거워했다.


“성평등 교육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

연구회 활동을 하는 걸 아는 지인들이 종종 묻는다. 재미있고 보람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린이였던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의 내가 했던 생각,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여전히 생각난다. 어린이들이 세상의 편견에 상처받는 순간이 보이고, 그럴 때면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도 쭉 ‘그렇게까지 열심’이려고 한다.





*가족 수업 링크 :

https://outbox.kr/archiv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1313829&t=board&category=NG1484Fx46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