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당연하지 않아, 그럴 수 있어! - 도레미

“당연하지 않아, 그럴 수 있어!”

- 당연하게 여겼던 규칙에 의문 품기


2023.04.17. 도레미


지난 3월 초, 아웃박스 3월 키트의 다양한 그림책으로 학급 세우기를 했다. 그중에서도 <왼손도 괜찮아!> 활동의 결과물인 "그럴 수 있어"는 칠판에 써 두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이 되었다. 이 말이 우리 반만의 시그니처가 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제목 보고 내용 유추하기로 활동을 열었다. ‘왜 왼손이 안 괜찮았을까요? 왼손이 안 괜찮을 이유가 있었을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저마다 왼손잡이를 무시하는 내용일 것 같다, 오른손 위주의 사회를 불평하는 내용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차별에 민감한 학생 하나는 이렇게도 답한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아요.”

과연 유추한 내용이 맞는지,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확인하자고 했다. 글밥이 많은 편이라 집중력이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긴 이야기 내내 생각보다 굉장히 조용히 긴장감 있게 들어주어서 감동이었다.

<왼손도 괜찮아>를 읽고 나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규칙들에 대해 할 얘기가 생긴다.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규칙, ‘원래~하는 거야’ 중에 의문이 드는 건 없냐고 물었다. '원래 엘리베이터는 선생님만 타는 거야.'처럼. 엘리베이터 예시가 학생들의 분노를 자극했는지 뜨거운 반응 속에 허니콤보드가 금세 채워졌다.

함께 읽어내려가며 합리적인 규칙인지, 편견이나 차별의 영향이 있는지 이야기 나눠보았다. 여성성/남성성 관련 내용이 가장 많았고, 나이/연필 잡는 법/사춘기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나왔다. 학생들이 평소에 많이 듣던 불편한 말들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우리 반 학생들이 참 밝고 순해서 이런 말 안 듣고 자랐을 거 같았는데, 이런 말을 듣고 감내하느라 순해진 걸까 싶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이런 규칙이 왜 생겼는지, 차별적인 말을 차별 없는 말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궁리해보았다. '원래 누나/언니/형이 양보하는 거야' 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은 어른스러워야 하며 어른스러운 행동이 무엇인지 정해져 있는 말이기 때문에 부당한 말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어른스럽지 않아도 돼' 로 바꾸어 말해주기로 했다. 물론 동생에게 양보할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도 동생에게 평생 양보한 사람이라 공감이 되었고, 학생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 거 같아 부담을 좀 덜어주고 싶어 부당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편을 들어주었다. '남자는/여자는 00해야 해' 라는 고정관념은 '여자와 남자는 똑같아, 그래도 돼, 그러지 않아도 돼.' 라고 바꾸어 말하기로 했다. 연필을 다르게 잡는다고 혼나는 건 부당하지만 안정적으로 연필을 잡는 방법이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연필 그렇게 잡는 거 아니야!’가 차별이라기엔 애매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원래 그 나이대는 다 그래!'는 사춘기에 철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서 생긴 말이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닐 텐데 일반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에서 반쯤 차별적인 말로 정했다. '그럴수도 있어' 라는 말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물론 많이들 어려워했다. ‘여성스럽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실제 여성이 다르다는 말을 이해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특히 가장 이것저것 많이 써서 냈던 두 학생은 평소에 ‘여자 같다, 여장하고 와라, 남자 같다’ 이런 성차별적인 표현을 자주 하는데, 이 시간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게 눈빛으로 다 보였다. 한 학생은 ‘예민한 게 뭐예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남자가 치마 입을 자유가 있으면 팬티만 입고 다닐 자유도 있는 건가요?’ 라며 헛소리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들을 하기도 했다. 전에 한 적 없던 생각과 마주하기 두려운 걸까. 알 수 없는 짜식... 이런 대화가 처음이라면, 인지부조화만 일어났어도 성공 아닐까. 

 

"그럴 수 있어!"

나눈 대화의 가치를 모두 담고 있는 문장을 뽑았다. 다른 사람들이 차별적인 말을 할 때 우리 반은 "그럴 수 있어"라고 한 마디씩 해서 차별당하는 이에게 힘이 되어주기로 했다.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어려워 짜증부터 내기도 하고 다름과 틀림에 대한 기준이 혼란스러워 작은 일에도 이르곤 했는데, 이 고마운 문장이 우리 반을 조금씩 따뜻하고 너그럽게 만들어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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