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매주 일요일, 아웃박스 교사 에세이가 연재됩니다.
교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교사들의 고민, 수업 아이디어 나눔까지! 아웃박스 교사들이 나눌 다양한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우리는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를 만들고 있을까?
2022.06.19. 아웃박스 망고
“띵동? 그게 뭔데?”
연구실 티타임 중이었다. 주말에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발행한 가이드북을 선물로 받았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도 면밀히 보여주고, 잘못된 오해들도 바로잡고, 교사로서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하고 학생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주말에 뭐했는지 나누다 보니 자연히 띵동 얘기가 나왔는데, 부장님이 궁금해하신 것.

(왼쪽)Q로 만드는 울타리-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환경 구축을 위한 기초조사보고서, 2016
(오른쪽)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 가이드북, 2018
“청소년 성소수자들 지원해주는 곳이에요. 상담도 하고 생필품이나 식재료를 지원해주기도 하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요.
이들 중에는 탈학교, 탈가정한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혐오발언을 학교에서 제일 많이 듣는다더라고요.”
“설마!”
작지만 확실한 반응, '설마'에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을 보태본다.
‘너는 부모님께 너의 이상함을 늘 죄송해해야 한다', ‘너희는 동성애 하지 마라, 더러워’
"선생님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한대요.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이라 여기고 성 정체성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정신 상태가 불안해서 A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며 보호자에게 바로 알려버리기도 하고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봐줄 사람이 없는 공간에 하루 종일 있으려니 불안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자살 시도 비율도 비성소수자의 5배나 된다더라고요. 그런 걸 견디다 못해서 학교를 그만두는 거예요. 학교 너무 다니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은데. 그래서 띵동의 도움을 받아서 공부하고 검정고시 보고 그런대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전국 단위 설문조사 '9~12학년 학생의 성 정체성, 성적 접촉의 성별, 건강 관련 행동(2015)’, 국내에는 성소수자 비율이나 자살 시도율 등 관련 통계 집계 이력이 없다. 관심과 보호가 현저히 부족한 실태라고 할 수 있다.
이례적인 사례가 아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2014)’ 보고서에 따르면, 80%는 교사로부터, 92%는 다른 학생으로부터 성소수자를 적대적 또는 모욕적으로 표현하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교사로부터(5.1%), 다른 학생으로부터(5.8%) 학교 활동 포기를 강요 당한 경험이 있고, 7%는 타인의 강요가 없었어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괴롭힘을 당할까봐 스스로 학교 활동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UNESCO의 ‘모욕에서 포용으로(2015)'라는 조사보고서에서 한국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테면 스웨덴에서는 2006년부터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차별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왔다. 이에 따라 다양한 성 정체성을 수용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을 유치원 교육과정에서부터 담고 있다. 또,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는 사랑과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묘사하고, 이를 비정상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행히도,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에는 처음으로 '성소수자 학생'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이에 따라 학생과 교직원들의 성인권 교육, 차별 실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계획이 발표된 뒤 '성소수자 학생'을 호명하고 보호하겠다는 지침에 대한 반발이 컸기에 쉽지 않긴 하겠지만, 흔들림없이 정책이 추진되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과 비교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사회에 비해 학교 정도면 성평등한 공간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많지만, 성인지감수성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이슈일수록 평화로운 공통의 상식은 먼 길이고, 이해의 폭을 좁힐 수 있을 만큼 괴로운 대화를 서로가 노력하며 여러 번 지나와야 한다. 지금 학교에서 가장 나누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가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고, 그래서 이에 관해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마음 속으로 여러 겹 보호막을 치고 말을 건넨다. 이성애자인 나도 마음을 다치고 말기 때문이다.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자주, '아 당사자의 마음은 어떻겠나' 하고 찔리듯 아픈 순간들을 종종 마주한다. 처음에 띵동 언급을 할 때부터, 다치게 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내 동료 선생님들이 보여주신 작은 반응에 다시금 안도할 수 있었다.
“헐. 제일 힘이 되어주고 학생들이 그렇게 말해도 그러지 말라고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
사람은 다양하고 모두 소중하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위로의 한 마디를 교사로부터 듣고 싶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에 이제야 귀 기울여보고 있다. 많이 늦었다는 부채감이 있다. 늦은 만큼, 얼마나 많은 제자들을 놓쳤을까 하는 미안함도 크다. 올해는 덜 다칠 수 있겠다는 안심과 함께, 기회 되는 대로 동료들과 더 얘기 나눠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얇은 가이드북 한 권을 읽는 내내 모든 게 새로울 만큼, 욕심 만큼의 지식과 관심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새롭게 깨닫는다. 그러니 공부하고, 나누고, 틈나는 대로 어린이의 존재에 대한 지지를 표현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잘 모르는 분야라면, 실수나 잘못을 할 확률도 높다는 뜻이므로. 성인지감수성을 공부하면서 가장 경계하려는 게 바로 무지 때문에 당당해지고 마는 부끄러운 차별과 혐오의 태도이니까.
우리는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를 만들고 있을까?
2022.06.19. 아웃박스 망고
“띵동? 그게 뭔데?”
연구실 티타임 중이었다. 주말에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발행한 가이드북을 선물로 받았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도 면밀히 보여주고, 잘못된 오해들도 바로잡고, 교사로서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하고 학생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주말에 뭐했는지 나누다 보니 자연히 띵동 얘기가 나왔는데, 부장님이 궁금해하신 것.
(왼쪽)Q로 만드는 울타리-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환경 구축을 위한 기초조사보고서, 2016
(오른쪽)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 가이드북, 2018
“청소년 성소수자들 지원해주는 곳이에요. 상담도 하고 생필품이나 식재료를 지원해주기도 하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요.
이들 중에는 탈학교, 탈가정한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혐오발언을 학교에서 제일 많이 듣는다더라고요.”
“설마!”
작지만 확실한 반응, '설마'에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을 보태본다.
‘너는 부모님께 너의 이상함을 늘 죄송해해야 한다',‘너희는 동성애 하지 마라, 더러워’"선생님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한대요.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이라 여기고 성 정체성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정신 상태가 불안해서 A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며 보호자에게 바로 알려버리기도 하고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봐줄 사람이 없는 공간에 하루 종일 있으려니 불안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자살 시도 비율도 비성소수자의 5배나 된다더라고요. 그런 걸 견디다 못해서 학교를 그만두는 거예요. 학교 너무 다니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은데. 그래서 띵동의 도움을 받아서 공부하고 검정고시 보고 그런대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전국 단위 설문조사 '9~12학년 학생의 성 정체성, 성적 접촉의 성별, 건강 관련 행동(2015)’, 국내에는 성소수자 비율이나 자살 시도율 등 관련 통계 집계 이력이 없다. 관심과 보호가 현저히 부족한 실태라고 할 수 있다.
이례적인 사례가 아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2014)’ 보고서에 따르면, 80%는 교사로부터, 92%는 다른 학생으로부터 성소수자를 적대적 또는 모욕적으로 표현하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교사로부터(5.1%), 다른 학생으로부터(5.8%) 학교 활동 포기를 강요 당한 경험이 있고, 7%는 타인의 강요가 없었어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괴롭힘을 당할까봐 스스로 학교 활동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UNESCO의 ‘모욕에서 포용으로(2015)'라는 조사보고서에서 한국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테면 스웨덴에서는 2006년부터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차별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왔다. 이에 따라 다양한 성 정체성을 수용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을 유치원 교육과정에서부터 담고 있다. 또,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는 사랑과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묘사하고, 이를 비정상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행히도,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에는 처음으로 '성소수자 학생'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이에 따라 학생과 교직원들의 성인권 교육, 차별 실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계획이 발표된 뒤 '성소수자 학생'을 호명하고 보호하겠다는 지침에 대한 반발이 컸기에 쉽지 않긴 하겠지만, 흔들림없이 정책이 추진되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과 비교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사회에 비해 학교 정도면 성평등한 공간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많지만, 성인지감수성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이슈일수록 평화로운 공통의 상식은 먼 길이고, 이해의 폭을 좁힐 수 있을 만큼 괴로운 대화를 서로가 노력하며 여러 번 지나와야 한다. 지금 학교에서 가장 나누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가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고, 그래서 이에 관해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마음 속으로 여러 겹 보호막을 치고 말을 건넨다. 이성애자인 나도 마음을 다치고 말기 때문이다.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자주, '아 당사자의 마음은 어떻겠나' 하고 찔리듯 아픈 순간들을 종종 마주한다. 처음에 띵동 언급을 할 때부터, 다치게 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내 동료 선생님들이 보여주신 작은 반응에 다시금 안도할 수 있었다.
“헐. 제일 힘이 되어주고 학생들이 그렇게 말해도 그러지 말라고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
사람은 다양하고 모두 소중하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위로의 한 마디를 교사로부터 듣고 싶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에 이제야 귀 기울여보고 있다. 많이 늦었다는 부채감이 있다. 늦은 만큼, 얼마나 많은 제자들을 놓쳤을까 하는 미안함도 크다. 올해는 덜 다칠 수 있겠다는 안심과 함께, 기회 되는 대로 동료들과 더 얘기 나눠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얇은 가이드북 한 권을 읽는 내내 모든 게 새로울 만큼, 욕심 만큼의 지식과 관심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새롭게 깨닫는다. 그러니 공부하고, 나누고, 틈나는 대로 어린이의 존재에 대한 지지를 표현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잘 모르는 분야라면, 실수나 잘못을 할 확률도 높다는 뜻이므로. 성인지감수성을 공부하면서 가장 경계하려는 게 바로 무지 때문에 당당해지고 마는 부끄러운 차별과 혐오의 태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