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 보세요 - 호호

[NOTICE]

매주 일요일, 아웃박스 교사 에세이가 연재됩니다. 

교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교사들의 고민, 수업 아이디어 나눔까지! 아웃박스 교사들이 나눌 다양한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 보세요


 

2022.06.12. 아웃박스 호호


 

언제, 어떤 계기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 교사로 정의하게 되었는지를 떠올려 본다.

교사로 임용되어 발령받은 첫해, 6학년 도덕을 담당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하루는 '대화의 중요성', '우정의 덕목' 수업을 하며 한 가지 활동을 준비했다.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서로 하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점을 종이 비행기에 적어서 주고받는 활동이었다. 

자신이 주운 종이 비행기에 적힌 말을 보고, 댓글을 달고, 그걸 또다시 던지고.. 교실에는 정신없이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녔고 학생들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솔직한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선생님은 종이비행기의 내용을 보지 않겠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무슨 내용을 주고받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결국 나는 우연히 내 앞에 떨어진 종이비행기 하나를 열어보고 말았다.


“우리 반 김치녀들이 다 죽었으면 좋겠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느낀 나는 즉시 수업을 멈추었다. 종이비행기를 모두 수거했고, 그 안에 적힌 수많은 혐오의 언어들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그제야 마냥 즐겁기만 했던 교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손거울과 화장품을 분신처럼 들고 다니며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며 꾸밈 노동을 자처하는 13살의 소녀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김치녀'와 '기모찌'를 서슴없이 남발하는 13살의 소년들. 교실 안의 누군가는 권력을 선점하였고 이미 그들 사이엔 위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되었다. 

 

페미니스트 교사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성평등 교육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 괜한 민원 받지 말고 주어진 것, 안전한 것만 하자'는 유혹, 스스로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이 늘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방향을 잃지 않고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원동력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거나 관련된 수업을 했을 때 '아~ 맞아, 그렇지!' 라고 하는 학생들의 반응, 그들이 보여주는 깨달음의 순간들이나 작은 변화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큼이나 또 하나 보탬이 되어주는 힘은 동료 선생님들과의 연대였다. 몇 해 전부터 나는 성평등 교육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임을 시작했다(맞다, 바로 아웃박스다😎). 그전까지는 '페미니즘 부스트 시대라는데 왜 학교나 주변에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나만 페미야?' 싶은 생각 때문에 조금은 외롭기도 했다. 그런데 아웃박스를 찾고, 나와 같은 교사들이 함께 성평등을 고민하고 행동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동료들과 느슨하지만 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위계 없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고 나누며 힘을 얻게 되었다. 연대 이후의 가장 큰 변화는, 내 교실 안에서만 조용히, 우리 반 학생들에게만 남몰래 했던 이야기를 조금은 넓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거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딱 지금처럼.

 

현재 우리 사회는 차별에서 혐오로, 혐오를 넘어서 폭력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누군가는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부터 분리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이들에게 비겁하다며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그러나 혐오와 폭력에 ’너는 왜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냐‘며 각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결국,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손을 잡고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욱 많은 이들이 연대의 힘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 제목의 문장은 동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의 가사이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노랫말이 꽤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가 힘들잖아요', '우리 가는 길이 결코 쉽진 않을 거에요'라니! 혐오에 지친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기쁨의 그날위해 함께 할 친구들이 있잖아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나의 친구랍니다. 

우리 가는 길이 결코 쉽진 않을 거에요. 때로는 모진 시련에 좌절도 하겠지만. 

우리의 친구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우린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원,투! 원,투,쓰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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