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오늘도 꼰대일 뻔 했다 - 뿌리


[NOTICE]

매주 일요일, 아웃박스 교사 에세이가 연재됩니다. 

교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교사들의 고민, 수업 아이디어 나눔까지! 아웃박스 교사들이 나눌 다양한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오늘도 꼰대일 뻔 했다


2022.06.05. 아웃박스 뿌리



 교대를 다닐 때 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사가 가져야 할 제일 중요한 자세는 어린이들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갖는 거라고. 하나의 기준에 의해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 이것을 실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평가는 ‘잘함’ ‘보통’ 등 전체적 기준이 있기 마련이었고, 통지표나 생활기록부에는 그런 정량적인 기록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늘 학기 말에 어린이들이 했던 활동사진들을 쫙 모아 놓고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가 성장한 모습을 보자는 의미에서였다. 1학년을 맡았을 때는 입학 다음날 자기 손도장을 찍고 1년간 보관해 두었다가 종업식 때 짠! 꺼내서 지금의 손과 비교해 보며 훌쩍 자란 모습을 느껴보도록 했다. 3월에 입었던 헐렁한 옷들을 딱 맞게 입고 있는 사진들도 함께 보았다. 하루하루의 변화라서 잘 몰랐는데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컸네! 하고 함께 웃었다. 더해서 10을 만들 수 있는 두 수를 찾던 게임, 그리고 받아올림이 있는 계산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척척 해내는 자신의 모습이 당연해지기까지. 그런 성장과 변화를 눈으로 지켜보고 느끼면서도 정작 ‘교사인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완성에 가까워진 어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완성이란 것이 존재할까. 어떤 경지를 완성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지만 교사 경력이 쌓일수록 배우는 일은 적어지고,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진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니 이미 완성되었다는 오만에 빠지기도 한다. 교실 속에서 나는 단 한 명의 교사로서 권위를 갖는다. 거기에서 오는 착각들이 몇 가지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진리이고 규칙이며, 절대적 기준이 된다고 느끼는 것들이다. 초임 때는 그런 감각이 어색했었다. 어린이들이 다 내게로 와서 판결을 기다리거나, 내가 세운 규칙을 당연히 따른다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 좀 생경하다고 느꼈다.

 

 아니 뭐 그 정도 규칙 좀 안 지켰다고 혼을 내야 하나? 어차피 그 규칙이란 것도 내년이 되어 다른 선생님 만나면 리셋될 건데, 그거 좀 안 지켰다고 혼까지 내야 해? 나도 화내면 기분이 안 좋은데. 감정 소모하기 너무 힘든데.

 

 그러나 몇 년 안 되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화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교실에서 내가 누리는 권위, 어린이들과 나 사이의 위계에 대해 익숙해진 것이다. 교실 속 지위에 대해 내가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려고 하고, 나의 실수에 대해서도 공개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실수를 얼버무리거나 숨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교실 속 나의 지위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완벽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작동한 것이었다. 위계질서는 감각적이고 본능적이다. 어느새 교실 속 교사의 권력을 알아채고, 나도 모르게 그 권위를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권위를 휘두르고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런 꼰대 교사가 아닌 줄 알았는데, 공정하고 정의로운 교사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살았구나. 1학년 학생들과 1년을 돌아봤던 것처럼, 나 역시 예전에 내가 느꼈던 것들과 현재를 비교해 보았다. 물론 이전의 내가 100% 옳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교사의 권위와 위계에 대해 인식하지 않고 지냈다면, 위계로부터 발생되는 폭력과 차별에 둔감한 교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어느 것도 확신하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단계인 것 같다.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쓰이고 또 매번 돌아보게 된다. 더 답답한 건 무지했던 시절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아마 다른 사람이 말해줬어도 그때의 나는 굽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그럴까 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지적해 준 것에 대해 귀를 닫을까봐 걱정이 된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에 녹아든 자연스러운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권력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전시하게 될까 봐 걱정스럽다.


 위계는 어린이들과 교사를 다른 존재로 규정짓고 선을 만든다. 하나하나 다른 개별의 존재로 바라보는 대신에 집단으로 바라보게 한다. 물론 교사의 권위를 아예 없애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교사가 지닌 권위가 무엇을 향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교사인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만나는 어린이들과 먼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가니 만나는 어린이들과 다른 세대의 감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교실 속 만남은 각자의 세계가 만나는 장이다. 나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를 맞닿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들이 위계와 권위 앞에 막혀서는 안된다. 


+ 덧붙이며, 

 많은 어린이들은 내가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사랑을 준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들어도 어린이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사랑하게 된다. 어린이들과 어떻게 하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업적과 문서로 남지 않아도 그것이 교사로서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며 교실 속 어린이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교사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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