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저학년은 처음이라서 - 헤엄

[NOTICE]

매주 일요일, 아웃박스 교사 에세이가 연재됩니다. 

교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교사들의 고민, 수업 아이디어 나눔까지! 아웃박스 교사들이 나눌 다양한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저학년은 처음이라서


 

2022.05.15. 아웃박스 헤엄

 



줄곧 고학년을 고수하던 내가 덜컥 2학년 교실로 떨어져 버렸다. 주로 공부하는 과목은 딱 세 가지. 국어, 수학, 통합. 말갛게 나를 쳐다보는 2학년 친구들의 눈을 보며 의지를 다진다. 너희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힘껏 도울 거야. 저학년 교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위해, 함께한 수업을 나누어본다.

 



하나, [경계 존중 교육] 허락받고 만져요

저학년과 고학년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경계선이라 대답하겠다. 고학년의 깍듯한 인사에 익숙했던 내가, 아침에 불쑥 허리를 끌어안는 저학년 친구들 손길에 깜짝 놀란 것이 몇 차례였다. 교사를 부둥켜안는 것이 이리도 쉬우니, 또래를 향한 스킨십은 스스럼없을 수밖에. 가만 지켜보다가, 교실 뒤편 놀이를 위해 펴둔 매트 위에 드러누워 서로 끌어안는 모습을 본 후 미룰 수 없이 경계 존중 교육이 이루어졌다.


(영상 출처-젠더온)

 

가장 먼저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싶을 때는 동의를 구해야 함을 배웠다. ‘어린이를 위한 동의’라는 미디어 클립을 활용한다면 어린이들은 이 명제를 쉽게 이해한다. 단, 교실에서는 동의란 말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허락’으로 바꾸어 공부했다.


내 몸에서 만져도 되는 곳과, 만질 수 없는 곳 구분하여 색칠하기

(활동지 출처-아웃박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게 허락을 구했을 때, 흔쾌히 접촉할 수 있는 신체를 구분하여 색칠하는 활동을 하였다. 단, 저학년은 신체 경계에 대한 개념이 비교적 흐릿하기 때문에 활동 전에 교사가 최소한의 경계를 반드시 설정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몸의 모든 곳을 만져도 된다고 색칠할 수 있다. 생식기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어 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다소 부담스럽다면 속옷을 입어 보호하는 곳은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만질 수 없다고 명확한 경계를 그어주는 것이 좋다.

물론 경계선 설정 활동 후에도 쉬는 시간 교실 곳곳에서는 서로 부둥켜안고 어깨, 다리, 손을 쓰다듬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지만 변화한 모습도 보인다. ‘나랑 화장실 같이 가자. 팔짱 끼고 가도 돼?’ 다정한 동의를 구하는 모습이.

 




둘, [성(姓)교육] 형제끼리 성이 다를 수도 있어요?

국어 시간, 돌림자를 써서 방울토마토 이름을 지어주는 교과서 재재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돌림자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는 저학년 친구들은, 가족과 이름 중 한 글자가 같은 것을 돌림자라고 생각했다. 아빠와 성이 같아 아빠와 자신이 돌림자를 쓰고 있다고 발표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근차근 짚어 보았다.

“아빠와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서로 의논해서 둘 중 한 명의 성을 물려줄 수 있어요. 결혼하였지만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따로 살게 되고, 마음 맞는 어른과 새로 결혼한다면, 아이의 성이 바뀔 수도 있고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질문이 열 개씩 쏟아진다. 선생님 그러면 형제끼리 성이 다를 수도 있어요? 선생님 그러면 엄마가 두 명이에요? (일동 경악의 표정, ‘히익’하는 기함 소리) 선생님 그러면 엄마랑만 살아요? 아빠는 못 봐요? 선생님? 선생님?

귀에서 피가 나기 직전, 출혈을 막아줄 수 있는 그림책을 꺼내놓는다. 2학년에는 가족과 관련된 성취기준으로 통합 교과에 ‘가족의 형태와 문화가 다양함을 알고 존중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가족을 살펴본다.’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은 3~4학년 사회, 5~6학년 실과에도 주제로 소개되고 있으니 중, 고학년에게도 추천한다.

 


그림책 <따로따로 행복하게>는 <엄마가 알을 낳았대>로 익히 알려져 있는 배빗 콜의 작품이다. 소형견을 좋아하는 아빠, 대형견을 좋아하는 엄마. 요트 여행을 가고 싶은 엄마와 캠핑을 가고 싶은 아빠. 성격과 취향이 너무나 다른 엄마와 아빠가 갈등을 겪으며 서로에게 심술을 부린다. 이를 지켜보며 속상해하던 남매가 직접 ‘끝혼식’을 열어 친구들을 초대하고, 결국 따로따로 행복하게 지낸다는 이야기이다. 다소 어렵거나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국어 교과와 연계하여 이를 활용하여 마음을 살펴보고,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림 출처-알라딘 인터넷 서점)


 

새로운 배우자를 만난 모습

엄마 집에 놀러 갔다 온 아이

(활동지 출처-인디스쿨 나무품광주 선생님 자료 변형)

 


우리 반 서른 명 친구들 마음이 모두 똑같지 않은 것처럼, 단짝과 마음이 맞지 않아 멀어진 것처럼, 가족끼리 좋아하는 것이 다를 때 따로 떨어져 각자 살 수 있음을 충분히 이야기해 주었다. 떨어져 사는 가족은 불쌍하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더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수업 후 어느 날, 교실에서 <엄마 까투리> 동화책을 함께 읽었다. 엄마 까투리가 홀로 아기 꿩을 기르는, 모성애에 기반한 희생이 중심이 되는 내용이었다.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선생님, 아빠 꿩은 어디 갔어요?’ 대답은 선생님 대신 친구들이 해 주었다. ‘엄마 까투리와 아빠 꿩은 끝혼식을 했을 거야.’라고.

 

 




셋, [성평등 교육] '남자아이'가 헷갈린 낱말은 무엇인가요?

굳이 거창한 수업 준비가 아니어도, 불편함을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저학년에서는 교육이 될 수 있다.



통합 시간, 봄 날씨와 어울리는 옷차림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입혀보는 활동을 했다.

비 오는 날엔 우비를 입어요, 해가 쨍쨍할 땐 모자를 써요. 신나게 발표하고 교과서에서 제공하는 붙임 딱지를 붙이려고 보니 웬걸, 어린이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여러분, 주황색 속옷을 입은 친구는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처음엔 모두 입을 모아 ‘남자예요’ 대답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는 친구들이 있다. 

“선생님, 그런데 0학년 0반 선생님도 머리가 짧은데 여자잖아요? 쟤도 여자일 수 있어요.”


(붙임딱지 출처-2학년 1학기 봄 교과서)

 




(삽화 출처-2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국어 시간, 또다시 교과서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발문이 등장하였다. 쾌재를 부르며 물어보았다.

 “여러분, 낱말을 헷갈린 어린이가 남자아이일까요?” 

이제는 어린이들 간 갑론을박이 오고 간다. 저학년 교실은 오늘도 예민하게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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