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오늘부터 매주 일요일, 아웃박스 교사 에세이가 연재됩니다.
교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교사들의 고민, 수업 아이디어 나눔까지! 아웃박스 교사들이 나눌 다양한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외모칭찬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도록
22.04.24. 해태쌤
첫 주에 학급세우기를 할 때부터 성별이 아니라 이름순으로 번호를 다시 주고, 이에 따라 자리도 배치하고 줄도 서왔기 때문일까?
우리 반 학생들은 줄곧 성별과 무관하게 잘 어울렸다.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이…' 로 말하는 경우도 많이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 기분 좋았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하니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른께서 예쁘다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고 발표하거나, 여학생들 사이에서 ‘예쁘다’는 말이 자주 오고갔다. 이런 순간이 수업과 업무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꾸 맴돌았다. 외모칭찬이 어째서 문제적인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은 몸이다’ 수업을 준비하였다.

원래 3차시로 구성되어있는 이 수업을 우리 반 학생들에게 맞추어 2차시로 재구성하였다. 1차시에서는 먼저 자신의 몸을 소개하였다. 그리고나서 몸을 기능과 외모로 나누어 이야기해본 후, 외모를 가꾸기 위한 노력(화장, 렌즈, 하이힐, 다이어트 등)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2차시에서는 아름다운 외모의 절대적 기준은 없고,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예쁨’ 또한 사회와 문화의 영향 아래 세워진 것이라는 내용을 다루었다. 그 후 사람의 행동이나 노력이 아닌 외모를 칭찬하는 것이 어째서 바람직하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1주일동안 ‘외모평가없이 대화하기’를 실천해보고 기록하였다.
1주일 후 수업을 마무리하며 새롭게 알게된 점이나 느낀점을 물어보니, ‘외모칭찬은 진짜 칭찬이 아니다’, ‘몸은 외모보다 기능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외모가 아니라 친구의 노력이나 행동에 칭찬을 해야겠다’ 등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외모칭찬은 맛있지만 건강에는 해로운 불량식품과 같다. 당장은 기분 좋을 수 있어도 외모칭찬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외모도 타인의 외모도 쉽게 평가하게 되기 마련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해 건강한 자아상을 갖추기 어렵다. 비록 짧은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이 무비판적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외모칭찬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우리 주변의 문제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한편 수업 후 나에게는 고민이 남았다. 수업이 물 흐르듯 잘 흘러갔는데 그래서일까? 이 기분은 동시에 내가 수업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이끌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비유하자면 목적지까지 너무 잘 안내한 내비게이션 같았다.
예전에 4학년 학생들은 아직 성차별의식이 굳어지기 전이므로 늦어도 이 시기부터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성평등 수업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다. 이는 동시에 많은 학생들이 성차별에 아직 많이 노출되어있지 않거나 그렇더라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수업을 하면서 종종 학생들에게 성차별과 관련된 경험에 대해 물어보면, 이들이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인지할 수 있는 성차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는 학생들의 이해 수준이 충분치 않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사회의 성차별이 갈수록 은은하고 교묘하게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이 뭐가 문제인지 모를것이라고 예상하며 수업을 준비했던 것은 아닌가, 필요이상으로 친절하게 안내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차시 중간에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영상 일부를 시청한 후, 외모칭찬에 대한 경험과 당시의 기분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학생들이 다들 예쁘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한 학생이 “기분이...‘어? 왜 나를 판단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직 데려가지 않은 곳에 벌써 도착한 이 학생에게 다소 놀란 나는 조금 어색한 칭찬을 한 마디 해주고는 다음 발문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지금에와서야 이 순간을 수업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성평등 수업에서는 가치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가치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 이를 내면화할 수 있다. 몇몇 교과의 가치모형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의 경험에서 출발할 것,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점을 나의 교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렸다. 성평등을 (성)평등하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갈림길이 나올때마다 방향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과 스스로 주변을 살피며 찾아가게 하는 지도, 그 중간 어디쯤의 수업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가 매번 어렵다.
>> 3차시 시리즈의 외모 수업은 젠더온 강의자료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바로가기>
외모칭찬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도록
22.04.24. 해태쌤
첫 주에 학급세우기를 할 때부터 성별이 아니라 이름순으로 번호를 다시 주고, 이에 따라 자리도 배치하고 줄도 서왔기 때문일까?
우리 반 학생들은 줄곧 성별과 무관하게 잘 어울렸다.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이…' 로 말하는 경우도 많이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 기분 좋았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하니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른께서 예쁘다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고 발표하거나, 여학생들 사이에서 ‘예쁘다’는 말이 자주 오고갔다. 이런 순간이 수업과 업무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꾸 맴돌았다. 외모칭찬이 어째서 문제적인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은 몸이다’ 수업을 준비하였다.
원래 3차시로 구성되어있는 이 수업을 우리 반 학생들에게 맞추어 2차시로 재구성하였다. 1차시에서는 먼저 자신의 몸을 소개하였다. 그리고나서 몸을 기능과 외모로 나누어 이야기해본 후, 외모를 가꾸기 위한 노력(화장, 렌즈, 하이힐, 다이어트 등)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2차시에서는 아름다운 외모의 절대적 기준은 없고,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예쁨’ 또한 사회와 문화의 영향 아래 세워진 것이라는 내용을 다루었다. 그 후 사람의 행동이나 노력이 아닌 외모를 칭찬하는 것이 어째서 바람직하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1주일동안 ‘외모평가없이 대화하기’를 실천해보고 기록하였다.
1주일 후 수업을 마무리하며 새롭게 알게된 점이나 느낀점을 물어보니, ‘외모칭찬은 진짜 칭찬이 아니다’, ‘몸은 외모보다 기능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외모가 아니라 친구의 노력이나 행동에 칭찬을 해야겠다’ 등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외모칭찬은 맛있지만 건강에는 해로운 불량식품과 같다. 당장은 기분 좋을 수 있어도 외모칭찬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외모도 타인의 외모도 쉽게 평가하게 되기 마련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해 건강한 자아상을 갖추기 어렵다. 비록 짧은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이 무비판적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외모칭찬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우리 주변의 문제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한편 수업 후 나에게는 고민이 남았다. 수업이 물 흐르듯 잘 흘러갔는데 그래서일까? 이 기분은 동시에 내가 수업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이끌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비유하자면 목적지까지 너무 잘 안내한 내비게이션 같았다.
예전에 4학년 학생들은 아직 성차별의식이 굳어지기 전이므로 늦어도 이 시기부터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성평등 수업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다. 이는 동시에 많은 학생들이 성차별에 아직 많이 노출되어있지 않거나 그렇더라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수업을 하면서 종종 학생들에게 성차별과 관련된 경험에 대해 물어보면, 이들이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인지할 수 있는 성차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는 학생들의 이해 수준이 충분치 않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사회의 성차별이 갈수록 은은하고 교묘하게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이 뭐가 문제인지 모를것이라고 예상하며 수업을 준비했던 것은 아닌가, 필요이상으로 친절하게 안내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차시 중간에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영상 일부를 시청한 후, 외모칭찬에 대한 경험과 당시의 기분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학생들이 다들 예쁘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한 학생이 “기분이...‘어? 왜 나를 판단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직 데려가지 않은 곳에 벌써 도착한 이 학생에게 다소 놀란 나는 조금 어색한 칭찬을 한 마디 해주고는 다음 발문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지금에와서야 이 순간을 수업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성평등 수업에서는 가치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가치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 이를 내면화할 수 있다. 몇몇 교과의 가치모형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의 경험에서 출발할 것,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점을 나의 교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렸다. 성평등을 (성)평등하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갈림길이 나올때마다 방향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과 스스로 주변을 살피며 찾아가게 하는 지도, 그 중간 어디쯤의 수업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가 매번 어렵다.
>> 3차시 시리즈의 외모 수업은 젠더온 강의자료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