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프레시안] "백래시 겪는 청소년들에게…좌절 금지! 변화는 원래 오래 걸린다"

[프레시안books] <볼 영화 없는 날> 펴낸 교사 김수진·김시원·황고운씨 인터뷰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2.01.31. 07:02:08

기사 원문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12717504213229#0DKU



"저희가 성인지 감수성을 가르쳐서 졸업시킨 학생들이 청소년이 된 뒤 더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를 경험할 수 있잖아요. 그 때 저희가 곁에 없어도 학생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으며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으면 해요."

저자들은 아웃박스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다. 2016년 고양시 일산 지역 한 초등학교에 첫 부임한 다섯 명의 교사들의 독서 모임으로 시작한 아웃박스는 일 년 만에 성별고정관념을 깨는 수업을 연구하고 새로운 성교육 교안을 고안해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등 학교 현장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는 연구회로 성장했다. 지금은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20명 가량의 교사들이 함께 활동한다. 황고운 교사는 "독서 모임 당시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면서 이야기가 자연스레 젠더 문제로 흘러가는 일이 많았다. 토론에서 젠더 문제를 풀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가 바로 그 교육자였다. 젠더 교육을 현장에 도입하자는 취지로 연구회로 전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힘'으로 차별 너머에 있는 다양성의 세계 보여주고파"
 

책 <볼 영화 없는 날>은 여성들이, 그리고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 모든 이들이 관람했을 때 '불편한 점'이 없는 영화 17편을 통해 청소년들이 생각해 볼만한 젠더 이슈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 영화 줄거리 설명이나 평가 보다는 영화를 소재로 사용해 주목 받지 못하는 여성 서사, 여전히 존재부터 '인정'을 갈구해야 하는 성소수자 이야기, 대상화되는 여성의 몸,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차별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차별의 다층적인 구조 등 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이를 넘어서기 위한 페미니즘 관련 주제를 폭넓게 다뤘다.  


▲<볼 영화 없는 날: 차별을 넘어 차이를 잇는 페미니즘 영화관> (김수진·김시원·황고운) ⓒ서해문집


저자들이 펴낸 내용은 교실에서 마주친 현실과 연결돼 있다. 책은 <아이 필 프리티>를 통해 외모 강박을 다뤘다. 저자들은 어른 여성들뿐 아니라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외모에 대한 강박을 흔히 목격한다고 했다. 마른 여자 연예인들을 영상으로 계속 접하며 자기 몸을 대상화하는 과정을 초등학교 여학생들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김시원 교사는 "어른들 시각에서 보면 다른 능력이 뛰어나서 외모에 신경 안 쓸 것 같은 아이들도 외모 강박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밥도 적게 먹고 사진이 자동으로 보정되는 휴대폰 카메라앱을 사용해 실제 자신의 얼굴과 대조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저자들은 어른들도 벗어나지 못하는 외모 강박을 아이들이 완전히 벗어버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외모 평가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교실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황고운 교사는 "서로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무례한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면 관련 대화가 적어진다. 그 빈 공간에 다른 이야기가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학생들이 몸의 모양에 너무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실에서 거울을 없애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책은 또 <당갈>(2016), <야구소녀>(2020)를 통해 여성이 스포츠에서 배제되는 모습, 그리고 이를 이겨내는 모습을 여성 운동선수들의 풍부한 예시를 통해 다뤘는데 이 역시 저자들이 실제 체육 수업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다. 저자들은 체육 교육을 할 때 관성적으로 성별로 종목을 나누거나 역할을 나누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또 운동 능력 등 개인 별로 기량이 다르다고 해도 "차이가 있어도 같이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학교 체육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황고운 교사는 "경험적으로 보면 여학생들은 운동을 싫어하고 특히 축구 등 구기 종목을 싫어한다는 통념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단지 늘 축구만 하면서 노는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의 기량 차이가 나고 이에 따른 성취감 차이도 나는 것"이라며 "모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단계까지 훈련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진 교사는 "아이들 간 기량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는 모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고안하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였다.

책은 영화 <피의 연대기>(2018)를 소개하며 월경을 감춰야 할 것으로 여기는 관습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실제 수업 때 이뤄지는 월경 교육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저자들은 월경 관련한 수업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호응이 높은 편이며 직접 월경 용품을 만져 보는 것을 학생들이 무척 재미있어 하고 남학생들의 경우 월경을 겪는 여자형제를 이해할 수 있어 유익했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했다.  

저자들은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현장에서 젠더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수진 교사는 "학생들이 계속 자라고 있으니 일 년 동안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특정한 모습으로 변화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평등한 공간'에 대한 인식이 생긴 학생들이 중등학교에 가서 차별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실제로 졸업생이 성평등 인권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온 적도 있다"고 했다. 김시원 교사도 "싹이 날 지 안 날 지는 몰라도 씨앗을 심는 마음"이라며 "학생들이 불평등을 감지했을 때 '내가 예민해서'라는 식으로 자책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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